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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26 18:42 수정 : 2016.09.26 19:03

김희정
시인

살기 위해 서울에 갔다
살고 싶어서 광화문에 갔다
살아야 했고 살아 있다고 말하려고
서울로 갔다
퍽퍽한 농촌 이야기 하기 위해
청와대가 있는 서울로 가야 했다
환영은 생각하지 않았다
동트기 전
밭으로 논으로 걸음 옮길 때마다
살아야 한다고
살아야 농촌도 지키고
자식도 지키고
이웃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희망을 찾으려고 몸부림쳤다
농촌이 농사가 쌀이 죽어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반겨주지 않을 것 알면서도 청와대로
힘든 발걸음 재촉했다
환영은 고사하고
최루액이, 물대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청와대 가까운 곳에 가서
한 마디라도 하려고
최루액을 맞고 물대포를 맞아가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쌀 현실에 대해 말 한 마디 못하고
그날 물대포에 쓰러진
농촌과 농민 모습을 보았다
삼백일 당신이 호흡기에 의존하면서 버티었는데
끝내 오늘 당신과 함께 쌀도 숨을 놓고 말았다
당신이 소박하게 꿈꾸었던 농촌, 농민, 쌀
그들은
개 짖는 소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때려야 말을 듣는 개돼지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 농촌을 향해 농민을 향해 쌀을 향해
무자비하게 공권력을 휘두를 수 없었다
당신, 이제 농민 그만두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입만 열면 농촌이 우리의 뿌리라고 외쳤던 헛구호
더 이상 듣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 부고는 당신 죽음을 알렸던 것이 아니라
농민의 죽음, 쌀의 죽음을 알렸다
이제 생명을 키우는 농민으로 태어나지 마시라
다시는 대한민국 농민으로 태어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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