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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22 18:00 수정 : 2016.09.12 14:55

김보경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초콜릿을 많이 먹는 나라일수록 노벨상 수상자가 많다.” 2012년 의학 분야의 권위지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 실린 논문 내용이다. 미국 <타임>이 이를 보도했고, 우리 주류언론도 받아썼다. 하지만 이 논문은 이상했다. 참고문헌을 적어야 할 자리에 특정 브랜드 초콜릿을 많이 먹어야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언론마저 속인 이 논문은 통계가 가진 대표적인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페이크 논문이었다.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겨레>가 지난 8일 보도한 ‘대구 어린이가 전북 어린이보다 왜 행복할까?’ 기사를 보면서 이 논문이 떠올랐다.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와 국제아동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7일 발표한 ‘한국 아동 삶의 질 종합지수 연구’를 인용한 기사였다. 한겨레는 “16개 광역 지방자치단체(세종시 제외) 중 서울을 포함한 8개 특별시·광역시가 종합지수 1~7위에 올랐다”며 “재정자립도가 높고 복지예산이 많은 대도시의 아동일수록 행복하다는 조사 결과”라고 보도했다.

기사는 ‘재정자립도’와 ‘아이들의 행복지수’라는 두 지표의 인과관계가 분명하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기사 어디에도 인과관계를 입증할 만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당장 기사 내용을 갖고도 반론을 할 수 있다. 종합지수 순위 기준 아동의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대구광역시는 재정자립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서울과 각 광역시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70%에 육박하는데 대구의 경우 50%를 밑돈다. 한겨레는 “‘주관적 행복감’ 영역도 대구, 부산, 울산, 인천, 광주, 제주, 대전, 서울 차례로 높아, 종합지수 순위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고 짚었다. 그러나 서울의 재정자립도(85%)는 압도적인 1위다. 그러나 행복지수는 16개 지자체 중 8위에 그쳤다.

한겨레는 또 다른 기사와 사설에서 국제적인 비교를 통해 우리나라 학생들이 더 불행하다고 지적했다. 국제조사를 언급하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행복도 조사에서 한국은 모든 연령대에서 꼴찌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조사 대상 12개국은 루마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등 우리와 경제규모에서 차이가 날뿐더러 교육시스템에서도 차이가 큰 국가가 다수다. 대상 12개국 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6개국뿐이었으며, 한국과 교육시스템이 비슷한 일본, 미국, 영국이 포함되지 않았다. 유의미한 통계를 내려면 신빙성 있는 표본국가를 뽑아야 했다.

사설에서 유리한 통계만 모으다 보니 스텝이 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치단체들의 재정자립도와 복지예산 비중 역시 아이들 삶의 질 지수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면서도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에티오피아보다도 (행복감 순위가) 낮았다. 풍족한 환경에 살면서도 행복감은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나라보다 한국 지자체의 복지예산이 적을 가능성은 없다. 한겨레 스스로 경제적인 원인뿐 아니라 복합적인 특성들이 아이들 행복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드러낸 대목이다.

물론, 한겨레는 통계 발표를 인용해서 기사를 썼고, 사설과 보충기사 등을 활용해 다른 언론에 비해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를 짚었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은 단순히 통계를 인용하는 게 아니다. 통계에 대한 ‘팩트체크’를 통해 한계를 짚고 양적·질적 취재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기사는 자의적인 통계 해석과 이에 따른 ‘스테레오 타입’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스위스 사람들이 초콜릿을 가장 많이 먹는 건 맞지만 초콜릿이 노벨상 수상 1위의 이유는 아닌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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