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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22 17:58 수정 : 2016.08.22 18:53

이명호
재단법인 여시재 선임연구위원

며칠 전 정부가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를 선정해 발표했다. 이름은 조금 바뀌었지만 2014년 6월의 13대 미래성장동력 발표, 2015년 3월의 19대 미래성장동력 발표에 이어 현 정부에서만 3번째다. 미래라는 기준이야 정하기 나름이지만, 보통 5년에서 20년을 내다보고 장기 전략을 짠다고 할 때, 매해 바뀌는 전략산업은 미래 전략이 아닌 트렌드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자동차는 자율주행차로 이름이 바뀌고, 알파고의 충격은 새롭게 인공지능 과제를 등장시켰다. 실패한 사업으로 언급이 기피되던 유(U)시티 사업은 스마트시티로 부활했다. 포켓몬 고의 영향이지는 않겠지만, 기존의 유사 과제가 통합되어 가상증강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선정되었다.

정부가 이렇게 계속해서 신성장동력이니 국가전략이니 하면서 연구개발(아르앤디, R&D) 전략을 내놓고 있지만, 정부 정책의 효과에 대한 비판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산업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아르앤디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한 해 투자가 19조원(정부 예산의 5%)으로 국내총생산 대비 세계 1위이고 연구 성공률은 96%라는데, 사업화율은 20%에 불과하고 국가 아르앤디 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1970년대 농촌진흥청의 통일벼 녹색혁명과 1980년대 전화시대를 연 전자통신연구원의 전전자식 교환기(TDX), 1990년대 휴대폰 시대를 연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개발 등은 정부 아르앤디 정책의 성공사례다. 이밖에 많은 정부 출연연구소들이 개발도상국 시대 민간의 부족한 아르앤디 역량을 지원하고, 모방형 아르앤디로 수입대체 기술을 개발해 민간에 이전해 주면서 경제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부터 획기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미 민간의 아르앤디 역량이 높아진 상태에서 정부 주도의 아르앤디 수요와 수입대체 기술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였는데, 정부는 여전히 산업육성 중심의 아르앤디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정부 아르앤디의 시장과 고객, 목적이 시대에 맞는지 재검토가 필요한데,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아르앤디 예산을 보면 미래창조과학부 34.3%, 산업통상자원부 17.8%, 방위사업청 13.4% 등으로 분산되어 있고, 산업지원형 예산이 50%를 넘는다. 그런데 미국은 연방 아르앤디 예산의 52.7%는 국방, 22.5%는 보건의료, 8.1%는 항공우주에 집중 투자하는 등 국가의 임무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정부의 명확한 목적 수행을 위해 개발된 기술을 민간에 이전해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아이폰에 탑재된 반도체, 위성항법장치(GPS), 터치스크린, 시리(siri) 등 대부분의 주요 기술들만 보더라도 국방부 등 정부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이제는 남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은 인공지능이 이슈가 되면 기업과 정부출연연구소의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시범사업을 위한 아르앤디를 지원해 인공지능 기술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기술을 확보했는데 쓸 곳이 없다는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 자체가 아니라 정부의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데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하다는 식의 목적 수립이어야 한다. 선후 관계를 뒤집어서는 영원히 추격자, 모방자를 벗어날 수 없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변변한 기술 하나 없었던 세월호의 교훈, 질병통제 시스템이 없었던 메르스의 교훈에서 시작해야 한다. 최고의 기술로 국민을 보호(국방, 안전, 보건의료 등)하는 국가가 되기 위한 아르앤디라는 임무 중심으로 어떻게 정부 체계를 개편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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