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전단지가 뜯어진 자국 위에 그녀는 다시 전단지를 붙인다. 신호등 앞 아스팔트 바닥에, 가로등 기둥에 전단지를 붙인다. 퇴근하던 시간 몇번 마주친 걸로 봐선 규칙적으로 붙이는 것 같다. ‘독일식 필라테스’를 홍보하는 전단지다. 강사가 아닌 학생으로 보이는 그녀는 전단지 아르바이트생일 것이다. 한 달 8만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필라테스를 배울 수 있다니. 우리의 대학등록금 제도가 독일식이라면 그녀는 독일식 필라테스 전단지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독일식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대개 이상적, 합리적이라는 말로 쓰인다. 정치인들은 여야 할 것 없이 휴식기나 공백기엔 독일을 방문한다.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꾸준히 논의되었다. 수많은 정치인이 독일을 다녀와도 여전히 독일식 노사관계, 독일식 통일, 독일식 정치시스템, 독일식 등록금제도, 독일식 복지제도는 이상이고 환상이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기듯, 유능한 독일인에게 이 모든 것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독일의 베를린의 사진 갤러리 ‘C/O 베를린’의 창립자 슈테판 에르푸르트는 <매거진 B>와의 인터뷰에서 베를린만이 지닌 특별함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베를린은 오픈 마인드를 지닌 도시예요.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에서는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공생하는 곳이고, 하이 컬처와 로 컬처가 맞닿아 있는 곳이지요. 사진에도 흑백이 있듯이, C/O 베를린이 자리한 동네에도 부와 가난이 공존한답니다. 실직자가 갤러리 카페에 들어와 앉아서 신문을 읽거나, 사색에 잠기거나, 창밖을 구경해도 좋아요. 공간 이용은 무료이고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으니까요.” 그가 말하는 베를린은 공존의 공간이다.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다. 베를린도 수도인 만큼 높은 주거비가 드는 도시이고, 최근 10년 동안 월세가 두 배 가까이 뛰었다고 한다. 그래도 ‘미트슈피겔’이라는 월세인상 기준표는 월세 인상폭을 법으로 제한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공공주택이 부동산 관리 회사로 넘어가면서 월세가 폭등하고, 주택 재개발로 서민들이 고통받기도 하지만, 적어도 시민들이 자기 동네 집값이 떨어지고, 학군의 질이 떨어진다는 명목으로 공공임대주택을 반대하진 않는다. 메르켈 총리는 남편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 건너편 임대아파트 4층에 살고 있다고 한다. 매일 그녀가 전단지를 붙이는 서울 양천구 목동 일대는 지역주민들의 집단적 반발로 신혼부부 및 사회 초년생을 위한 행복주택이 무산되었다. 독일식 주거도, 독일식 노사관계나 정치제도는 물론, 독일식 대학등록금 제도도 요원하기만 한 이 나라, 이 도시의 사람들은 독일식 필라테스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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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독일식’이라는 말 / 여성국 |
여성국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전단지가 뜯어진 자국 위에 그녀는 다시 전단지를 붙인다. 신호등 앞 아스팔트 바닥에, 가로등 기둥에 전단지를 붙인다. 퇴근하던 시간 몇번 마주친 걸로 봐선 규칙적으로 붙이는 것 같다. ‘독일식 필라테스’를 홍보하는 전단지다. 강사가 아닌 학생으로 보이는 그녀는 전단지 아르바이트생일 것이다. 한 달 8만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필라테스를 배울 수 있다니. 우리의 대학등록금 제도가 독일식이라면 그녀는 독일식 필라테스 전단지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독일식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대개 이상적, 합리적이라는 말로 쓰인다. 정치인들은 여야 할 것 없이 휴식기나 공백기엔 독일을 방문한다.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꾸준히 논의되었다. 수많은 정치인이 독일을 다녀와도 여전히 독일식 노사관계, 독일식 통일, 독일식 정치시스템, 독일식 등록금제도, 독일식 복지제도는 이상이고 환상이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기듯, 유능한 독일인에게 이 모든 것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독일의 베를린의 사진 갤러리 ‘C/O 베를린’의 창립자 슈테판 에르푸르트는 <매거진 B>와의 인터뷰에서 베를린만이 지닌 특별함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베를린은 오픈 마인드를 지닌 도시예요.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에서는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공생하는 곳이고, 하이 컬처와 로 컬처가 맞닿아 있는 곳이지요. 사진에도 흑백이 있듯이, C/O 베를린이 자리한 동네에도 부와 가난이 공존한답니다. 실직자가 갤러리 카페에 들어와 앉아서 신문을 읽거나, 사색에 잠기거나, 창밖을 구경해도 좋아요. 공간 이용은 무료이고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으니까요.” 그가 말하는 베를린은 공존의 공간이다.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다. 베를린도 수도인 만큼 높은 주거비가 드는 도시이고, 최근 10년 동안 월세가 두 배 가까이 뛰었다고 한다. 그래도 ‘미트슈피겔’이라는 월세인상 기준표는 월세 인상폭을 법으로 제한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공공주택이 부동산 관리 회사로 넘어가면서 월세가 폭등하고, 주택 재개발로 서민들이 고통받기도 하지만, 적어도 시민들이 자기 동네 집값이 떨어지고, 학군의 질이 떨어진다는 명목으로 공공임대주택을 반대하진 않는다. 메르켈 총리는 남편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 건너편 임대아파트 4층에 살고 있다고 한다. 매일 그녀가 전단지를 붙이는 서울 양천구 목동 일대는 지역주민들의 집단적 반발로 신혼부부 및 사회 초년생을 위한 행복주택이 무산되었다. 독일식 주거도, 독일식 노사관계나 정치제도는 물론, 독일식 대학등록금 제도도 요원하기만 한 이 나라, 이 도시의 사람들은 독일식 필라테스를 배운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전단지가 뜯어진 자국 위에 그녀는 다시 전단지를 붙인다. 신호등 앞 아스팔트 바닥에, 가로등 기둥에 전단지를 붙인다. 퇴근하던 시간 몇번 마주친 걸로 봐선 규칙적으로 붙이는 것 같다. ‘독일식 필라테스’를 홍보하는 전단지다. 강사가 아닌 학생으로 보이는 그녀는 전단지 아르바이트생일 것이다. 한 달 8만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필라테스를 배울 수 있다니. 우리의 대학등록금 제도가 독일식이라면 그녀는 독일식 필라테스 전단지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독일식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대개 이상적, 합리적이라는 말로 쓰인다. 정치인들은 여야 할 것 없이 휴식기나 공백기엔 독일을 방문한다.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꾸준히 논의되었다. 수많은 정치인이 독일을 다녀와도 여전히 독일식 노사관계, 독일식 통일, 독일식 정치시스템, 독일식 등록금제도, 독일식 복지제도는 이상이고 환상이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기듯, 유능한 독일인에게 이 모든 것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독일의 베를린의 사진 갤러리 ‘C/O 베를린’의 창립자 슈테판 에르푸르트는 <매거진 B>와의 인터뷰에서 베를린만이 지닌 특별함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베를린은 오픈 마인드를 지닌 도시예요.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에서는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공생하는 곳이고, 하이 컬처와 로 컬처가 맞닿아 있는 곳이지요. 사진에도 흑백이 있듯이, C/O 베를린이 자리한 동네에도 부와 가난이 공존한답니다. 실직자가 갤러리 카페에 들어와 앉아서 신문을 읽거나, 사색에 잠기거나, 창밖을 구경해도 좋아요. 공간 이용은 무료이고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으니까요.” 그가 말하는 베를린은 공존의 공간이다.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다. 베를린도 수도인 만큼 높은 주거비가 드는 도시이고, 최근 10년 동안 월세가 두 배 가까이 뛰었다고 한다. 그래도 ‘미트슈피겔’이라는 월세인상 기준표는 월세 인상폭을 법으로 제한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공공주택이 부동산 관리 회사로 넘어가면서 월세가 폭등하고, 주택 재개발로 서민들이 고통받기도 하지만, 적어도 시민들이 자기 동네 집값이 떨어지고, 학군의 질이 떨어진다는 명목으로 공공임대주택을 반대하진 않는다. 메르켈 총리는 남편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 건너편 임대아파트 4층에 살고 있다고 한다. 매일 그녀가 전단지를 붙이는 서울 양천구 목동 일대는 지역주민들의 집단적 반발로 신혼부부 및 사회 초년생을 위한 행복주택이 무산되었다. 독일식 주거도, 독일식 노사관계나 정치제도는 물론, 독일식 대학등록금 제도도 요원하기만 한 이 나라, 이 도시의 사람들은 독일식 필라테스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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