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영화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반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그렸다. 극중 여성노동자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하원의원의 부인에게 남자들은 “일이나 제대로 해본 적 있소?”라고 조롱한다. 노동을 한다는 것은 곧 경제력을 의미했다. 그리고 경제력은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의미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남성에 비해 노동력이 떨어진다고 간주된 여성은 정치적 의사결정권, 선거권을 부여받지 못했다. 여성의 참정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초기 민주주의에는 남성 중에서도 일정 수준의 재산을 가진 사람만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경제력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중요한 기준이었고, 민주주의의 발전은 경제력이라는 변수의 영향력과 반비례했다. 그런데 경제력의 영향력이 제도적으로는 완전히 사라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훨씬 더 교묘한 방식의 ‘경제에 의한 정치의 예속화’가 이뤄지고 있다. 교육부 고위공직자의 “대중은 개돼지” 발언은 어두운 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행정고시 합격으로 담보된 성공의 길과 경제적 안정 속에서 사는 엘리트가 보기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아등바등 살다가 떠난 청년의 이야기는 개돼지들의 감성팔이용 소재일 뿐이다. 개돼지들은 모든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박탈당한 채 엘리트들의 결정에 의해 수동적으로 살아가면 그만인 존재들이다. 1인 1투표권이라는 제도적 정당성 속에서 엘리트들은 영향력을 더욱 넓혀간다.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최저임금의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배제되고 있다. 사용자 쪽이 고수한 6030원과 노동자 쪽이 주장한 1만원 중에서 결과는 6470원이었다. 얼핏 봐도 타협점이라고 하기엔 사용자 쪽에 기운 값이다. 이를 월급으로 환산한 135만2230원은 비혼 단신 노동자의 실태생계비(167만3803원)의 80.8% 수준이다. 왜 이런 결정이 나온 것일까? 최저임금위원회 구성의 제3의 축을 담당하는 정부 추천 공익위원들이 경제적으로 최저임금에 아등바등하는 노동자들에 가까울 리 없다.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경제적 안정이 보장된 이들의 세상에서 정부, 재계, 법조계 등의 카르텔은 개돼지들의 의사를 더욱 옥죄고 있다. 노동자들이 권리 보장을 외치며 삭발을 하고 고공농성을 벌이는 동안 고위 검사는 교묘한 카르텔 속 거래로 수백억을 챙겼다. 돈만 있으면 1인 1투표권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불합리한 현실은 대중의 무기력함만 가중시켰다.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최근 확산되는 개돼지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폐부를 찌른다. 견고해지는 그들만의 카르텔 아래서 개돼지 취급이라도 받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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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1인1투표권 뒤의 동물농장 / 강영호 |
강영호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영화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반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그렸다. 극중 여성노동자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하원의원의 부인에게 남자들은 “일이나 제대로 해본 적 있소?”라고 조롱한다. 노동을 한다는 것은 곧 경제력을 의미했다. 그리고 경제력은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의미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남성에 비해 노동력이 떨어진다고 간주된 여성은 정치적 의사결정권, 선거권을 부여받지 못했다. 여성의 참정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초기 민주주의에는 남성 중에서도 일정 수준의 재산을 가진 사람만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경제력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중요한 기준이었고, 민주주의의 발전은 경제력이라는 변수의 영향력과 반비례했다. 그런데 경제력의 영향력이 제도적으로는 완전히 사라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훨씬 더 교묘한 방식의 ‘경제에 의한 정치의 예속화’가 이뤄지고 있다. 교육부 고위공직자의 “대중은 개돼지” 발언은 어두운 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행정고시 합격으로 담보된 성공의 길과 경제적 안정 속에서 사는 엘리트가 보기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아등바등 살다가 떠난 청년의 이야기는 개돼지들의 감성팔이용 소재일 뿐이다. 개돼지들은 모든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박탈당한 채 엘리트들의 결정에 의해 수동적으로 살아가면 그만인 존재들이다. 1인 1투표권이라는 제도적 정당성 속에서 엘리트들은 영향력을 더욱 넓혀간다.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최저임금의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배제되고 있다. 사용자 쪽이 고수한 6030원과 노동자 쪽이 주장한 1만원 중에서 결과는 6470원이었다. 얼핏 봐도 타협점이라고 하기엔 사용자 쪽에 기운 값이다. 이를 월급으로 환산한 135만2230원은 비혼 단신 노동자의 실태생계비(167만3803원)의 80.8% 수준이다. 왜 이런 결정이 나온 것일까? 최저임금위원회 구성의 제3의 축을 담당하는 정부 추천 공익위원들이 경제적으로 최저임금에 아등바등하는 노동자들에 가까울 리 없다.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경제적 안정이 보장된 이들의 세상에서 정부, 재계, 법조계 등의 카르텔은 개돼지들의 의사를 더욱 옥죄고 있다. 노동자들이 권리 보장을 외치며 삭발을 하고 고공농성을 벌이는 동안 고위 검사는 교묘한 카르텔 속 거래로 수백억을 챙겼다. 돈만 있으면 1인 1투표권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불합리한 현실은 대중의 무기력함만 가중시켰다.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최근 확산되는 개돼지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폐부를 찌른다. 견고해지는 그들만의 카르텔 아래서 개돼지 취급이라도 받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영화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반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그렸다. 극중 여성노동자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하원의원의 부인에게 남자들은 “일이나 제대로 해본 적 있소?”라고 조롱한다. 노동을 한다는 것은 곧 경제력을 의미했다. 그리고 경제력은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의미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남성에 비해 노동력이 떨어진다고 간주된 여성은 정치적 의사결정권, 선거권을 부여받지 못했다. 여성의 참정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초기 민주주의에는 남성 중에서도 일정 수준의 재산을 가진 사람만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경제력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중요한 기준이었고, 민주주의의 발전은 경제력이라는 변수의 영향력과 반비례했다. 그런데 경제력의 영향력이 제도적으로는 완전히 사라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훨씬 더 교묘한 방식의 ‘경제에 의한 정치의 예속화’가 이뤄지고 있다. 교육부 고위공직자의 “대중은 개돼지” 발언은 어두운 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행정고시 합격으로 담보된 성공의 길과 경제적 안정 속에서 사는 엘리트가 보기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아등바등 살다가 떠난 청년의 이야기는 개돼지들의 감성팔이용 소재일 뿐이다. 개돼지들은 모든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박탈당한 채 엘리트들의 결정에 의해 수동적으로 살아가면 그만인 존재들이다. 1인 1투표권이라는 제도적 정당성 속에서 엘리트들은 영향력을 더욱 넓혀간다.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최저임금의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배제되고 있다. 사용자 쪽이 고수한 6030원과 노동자 쪽이 주장한 1만원 중에서 결과는 6470원이었다. 얼핏 봐도 타협점이라고 하기엔 사용자 쪽에 기운 값이다. 이를 월급으로 환산한 135만2230원은 비혼 단신 노동자의 실태생계비(167만3803원)의 80.8% 수준이다. 왜 이런 결정이 나온 것일까? 최저임금위원회 구성의 제3의 축을 담당하는 정부 추천 공익위원들이 경제적으로 최저임금에 아등바등하는 노동자들에 가까울 리 없다.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경제적 안정이 보장된 이들의 세상에서 정부, 재계, 법조계 등의 카르텔은 개돼지들의 의사를 더욱 옥죄고 있다. 노동자들이 권리 보장을 외치며 삭발을 하고 고공농성을 벌이는 동안 고위 검사는 교묘한 카르텔 속 거래로 수백억을 챙겼다. 돈만 있으면 1인 1투표권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불합리한 현실은 대중의 무기력함만 가중시켰다.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최근 확산되는 개돼지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폐부를 찌른다. 견고해지는 그들만의 카르텔 아래서 개돼지 취급이라도 받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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