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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25 18:36 수정 : 2016.07.25 19:15

정병호
한양대 교수, 평화디딤돌 대표

세상에는 받아서는 안 되는 돈이 있다. 피해자의 동의 없이 누구라도 대신 가해자의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 설사 그 가족, 친권자라고 해도 가해자의 돈을 받고 문제해결을 주장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정부가 또다시 그런 패륜적 월권을 하려고 한다.

‘또다시’라고 함은 이미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청구권 협정을 통하여 강제징용, 군인군속, 위안부 등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을 대신하여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고 그 사실을 피해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다른 용도로 써버렸다. 협상 과정에서 일본이 피해 당사자들에게 직접 지급하겠다고 하자, 한국 정부는 “우리를 못 믿느냐? 한국 정부가 책임지고 지급한다”고 했다. 그런 사실조차 2005년 외교문서 비밀해제 때까지 국민들이 몰랐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국민적 항의를 군사계엄령으로 누르고 끝내 조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양국은 이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배상청구 권리는 국제법적 근거를 잃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도와줄 의지도 자격도 없었다.

문제는 대한민국 정부다. 다시 50년 만에 박근혜 정부는 피해자 동의 없이 일본 정부와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다. 일본으로부터 약 100억원을 받아서 모든 전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했다.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이런 내용에 동의하고 합의했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모든 전 위안부’라니? 10만명에서 20만명으로 추정되는 ‘모든 전 일본군 위안부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업’이 1인당 5만원에서 10만원이면 된다고 누가 계산했는가?

참혹한 괴롭힘을 당하다 죽어간 모든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과 그 억울함을 참고 사는 모든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238분의 할머니들이 이름을 밝히고 나섰다. 그 할머니들이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1240회의 수요집회를 할 동안 대한민국 외교부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지난 24년 동안 폭염과 혹한을 가리지 않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 온몸으로 절규하다 198분이 돌아가실 동안 무엇을 했는가? 혹시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40분에게 1억~2억원씩 드리면 이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계산한 금액인가? 그래서 대한민국 외교부가 앞장서서 그 돈은 ‘치유금’이 아니고 일본 정부가 출연한 ‘배상금 성격’이라고 변명하나?

참고로 나치 독일의 강제노동 희생자를 위한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은 독일 정부와 기업이 2000년 당시 약 6조원을 출연하여 설립했다. 그리고 다시 2013년, 독일 정부는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생존자들의 노후의료와 복지를 위하여 약 1조원을 추가로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국민을 대신해서 상대국과 외교적 합의를 할 때는 역사를 두려워해야 한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양도한 을사조약 체결 소식을 듣고 장지연 선생은 외부대신 박제순을 비롯한 5명의 대신이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다”고 ‘시일야방성대곡’에 썼다. 110년이 지난 오늘 폭염의 수요집회 현장에서 다시 목놓아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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