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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18 18:16 수정 : 2016.07.18 19:18

최광진
미술평론가

필자는 지난달 29일 열린 서울옥션의 여름 미술품 경매에 앞서 이 경매에 낼 예정이던 고 천경자 화백의 스케치 화문집이 위작이니 출품을 취소해달라는 의견을 옥션 쪽에 전한 바 있다. 이 작품은 “1983년 6월 지인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해외여행 스케치 작품 16점을 모은 화문집”이라는 설명과 함께 나왔던 것이다. 추정가 4억~6억원으로 나온 이 화문집은 처음 발견된 고인의 작품으로 신문에 소개되고 경매 도록에도 실렸다.

서울옥션은 일단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경매를 취소하고 추가 감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경매 취소 사실이 <한겨레>에 보도(6월29일치 20면)된 뒤 다른 언론들이 이유를 묻자 “작품을 한번 더 감정해 명명백백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라며 “여전히 해당 작품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처음 위작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감정 전문가라기보다 미술계에 종사하는 관계자 정도로 알고 있다”며 “작품을 보지도 않고 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필자는 과거 화랑협회에서 7년간 한국화를 감정했다. 1995년 호암갤러리의 천경자 회고전을 기획했고 최근 천경자 평전을 내면서 많은 자료를 확보했다. 문제의 화문집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진위에 문제가 있었다.

추가 감정을 약속했던 서울옥션은 시간을 끌다 이 화문집을 소장자에게 돌려주고는 “소장자가 판매 의사를 철회하고 작품을 찾아갔다. 경매사가 소장자 의사에 반해 감정을 할 수는 없다”고 발뺌했다. 이런 미온적인 태도는 서울옥션이 위작을 덮으려 했다는 또다른 의혹을 낳게 된다. 이 작품은 경매도록에 실려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유통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이 위작이라는 근거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화문집은 필치가 조잡하고, 여기저기서 어설프게 짜깁기한 흔적이 역력하다. 서울옥션 쪽은 “작가들이 대개 도상을 반복적으로 쓰며 여기 있는 그림이 저기 있다고 위작으로 확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작가는 장소성이 중요한 현장 스케치를 짜깁기하지는 않는다. 화문집 일부인 <호놀룰루>(그림 1)는 하와이 풍경에 페루 사람들이 그려진 작품이다. 천 화백은 1969년 미국과 유럽, 남태평양 등지를 여행하면서 그해 8월4일 호놀룰루에서 스케치 원본을 남겼다.(그림 2) 문제의 작품은 이 스케치 원본에 훗날 그린 페루 쿠스코 시장 사람들의 이미지가 섞여 있다. 작가가 페루를 간 것은 1979년이고 이때 <쿠스코 시장>(그림 3)을 그렸다. 페루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똑같은 복장을 하고 10년 전 호놀룰루에 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또다른 작품은 1969년의 사모아 풍경을 그리면서 93년 그린 <그라나다 시장>의 사람들을 섞어놓기도 했다. 화문집에 있는 그림 16점 모두 이런 식이다.

서울옥션은 국내 굴지의 경매사다. 위작 시비가 일어났을 때는 작품 감정을 맡은 전문가들의 책임있는 답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올바른 감정 문화가 정립되려면 감정 절차가 투명해야 하고, 감정가는 자기 명예를 걸고 감정해야 한다. 누가 어떻게 감정을 했는지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시스템에서 위작 단절은 불가능하다. 이번 사건이 서울옥션이 감정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건전한 경매기관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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