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27 18:43
수정 : 2005.10.27 18:46
왜냐면
나는 엄혹했던 독재시절에 검찰독립을 요구하면서 옷을 벗는 결단을 내리는 검찰간부가 있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정도로나마 검찰이 독립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은 국민들의 민주화 투쟁에 힘입은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검찰은 이에 무임승차한 것에 불과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안팎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장관으로 임명했을 때 국민은 그동안 거대자본과 권력에는 한없이 약하면서도 힘없는 국민들에게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검찰도 변하겠구나 하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강 장관의 개혁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후임으로 검찰개혁과는 거리가 먼 분을 법무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을 보고는 ‘이 정권이 수구언론들과의 말싸움으로 일관하면서 개혁을 외면하더니 결국 검찰개혁도 포기하는 구나!’ 하고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천정배 의원이 법무부 장관이 되면서 다시 한번 일말의 기대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강정구 교수 사건이 터졌다. 장관의 수사지휘는 공개적이고 투명하고 적법했다. 내용적인 면으로 보아도 법과 원칙에 충실한 정당한 지휘였다. 그러나 총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검찰독립을 부르짖으며 사퇴했고, 수구세력들은 이를 국가 정체성 논란으로 확대 왜곡하고 있다. 나는 엄혹했던 독재시절에 검찰독립을 요구하면서 옷을 벗는 결단을 내리는 검찰간부가 있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나마 판사들은 사법파동을 일으키기도 했고 국민적 요구를 전혀 수용하지 않는 대법관 제청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검찰독립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이 정도로나마 검찰이 독립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은 국민들의 민주화 투쟁에 힘입은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검찰은 이에 무임승차한 것에 불과하다. 이번에 총장이 검찰독립 때문에 옷을 벗는 것이라고 강변하고 수구세력들이 검찰독립을 목 놓아 외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번 사태는 다시금 왜 지금 검찰개혁이 필요한가 하는 것을 절감하게 해 주었다. 강 교수 사건은 공안사건에 대한 검찰의 구속수사 관행에서 빚어진 것이다. 이런 관행을 바꿔야 한다.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라는 형소법상의 구속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불구속 수사하는 것이 맞다. 국가보안법 사건이라고 해서 구속해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반인권적 발상이다.
나는 한총련 학생들을 변호하면서 법원이 학생들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다. 그런데도 경찰과 검찰은 구속기간을 연장까지 해가면서 구속수사를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근본적으로는 한나라당까지 개정해야 한다고 인정한 보안법의 정당성까지 검찰은 성찰해야 한다. 모든 국가기관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켜야 할 의무가 있고 특히 준사법기관인 검찰은 다른 기관보다 그 책임이 더 크다. 검찰이 인권 옹호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실정법이 헌법에, 시대상황에, 국민인식에 위배되지 않는가 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
지금 검찰 앞에는 여러 과제가 있지만 주요하게는 공판 중심주의로의 변화, 과거사 청산,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 공판 중심주의는 지금껏 조서와 자백에 의존하여 인권침해 시비를 불러온 수사방식을 바꿀 것, 과거사 청산은 기계적으로 법률을 적용하면서 1차 수사기관의 고문조작과 불법수사를 묵인해 왔던 과거를 반성할 것,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 위에 군림하는 검찰에서 탈피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공판중심으로의 전환에 대해서는 검찰의 수사권이 약해진다고 반발하고, 과거청산에 대해서는 1차 수사기관과 법원의 책임이라며 회피하고,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서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조직 이기주의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진정으로 검찰독립을 이루고 국민들에게서 신뢰받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성하고 노력해야 한다.
한편으로 도청과 이건희 게이트로 불러 마땅한 엑스파일 사건에 대한 수사를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 수사를 통해 검찰은 이제 거대자본과 권력의 범죄에도 공정하고 엄정한 칼날을 들이댄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검찰간부들에 대한 조사도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장관과 새 검찰총장은 검찰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 귀담아 듣고 실천에 옮겨주시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내부의 반발도 있을 테고 수구언론들의 호들갑도 있을 것이다. 수구언론은 마녀사냥식 색깔론으로 사건을 키워 강 교수를 구속하려 했고 그것이 장관에 의해 실패하자 장관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을 해대고 있다. 검찰개혁을 추진하다 보면 이런 사태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그래서 수구신문들 너무 꼼꼼히 보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들의 선동적이고 논리비약적인 공세에 일일이 대응을 할 필요가 없다. 흔들림 없고 일관성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검찰개혁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검찰이 진정한 인권 옹호기관으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류제성/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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