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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우리 안의 괴물부터 몰아내자 |
연일 보도되는 여성대상 범죄, 일련의 사건들은 기시감이 있다. 어찌 보면 역사적 족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안의 괴물을 소환해볼까. 조선 후기 양반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여성의 자살을 유도한 홍살문까지는 비틀어보지 않더라도, 내가 경험한 과거까지만 돌아가보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남의 집 가사를 하는 어린 소녀를 그 집 남성이 성폭행한다. 후안무치한 범죄 이후 가족들은 합의한 듯 발칙한 것이 유혹했다,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수군댄다. 사람들은 피해자를 비웃고 추방하는 데 단호했다. 이러한 2차 피해의 생산자들은 남녀 구분이 없었다. 피해자에게 냉혹하고 가해자에게 감정이입되는 이 끔찍한 사고 기제가 우리 안에 있다. 이러한 부조리의 밑밥들이 오늘날 성범죄를 오락으로 인식하는 사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섹시코드로 춤추는 아이돌 문화에도 숨어 있고, 사랑의 격정을 유리창 깨는 행위로 표현하는 드라마에도 깔려 있다. 여성은 행위의 대상이 되고 남성은 행위의 주체가 되는 힘의 불균형성, 그 명백한 폭력을 볼만한 것, 재미있는 것으로 동의하는 순간 우리는 가해자의 정서와 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대상을 구분하고 혐의를 두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조현병이 아니라 “여자들이 나를 무시했다”는 언사가 행위 동기가 되는 가부장 문화의 폭력성을 얼마나 내면화하고 있는가에 있다. 그것이 우리 안의 괴물이고, 그 괴물을 내몰아야만 우리는 사실을 사실 자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7살 지능의 13살 여아가 성폭력을 당할 당시의 어리둥절함과 모멸감이 분노로 다가오고, 동료 여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보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야만적인 일인지 공감할 수 있다. 잠시 즐겼을 뿐인 한 남자의 미래를 망칠 수 없다는 어이없는 가해자 감정이입이 사라질 수 있다.
그 모든 사회문화적 더미에서 학부모와 마을주민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교사의 대응은 성폭력의 본질을 왜곡하고 피해자를 숨어들게 했던 우리 안의 괴물들에 저항한 영웅적인 행위임이 분명하다. 2013년 성폭력특별법이 개정된 이후 이루어진 성폭력예방교육과 피해자지원시설의 전문성 강화가 이루어낸 성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마음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 일련의 일들을 담론화하고 확장시켜온 그 모든 추모의 염을 받아 문제를 본질적으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안의 괴물들을 정시하는 철학적 사유의 힘을 기르자. 학교 밖을 나가면 더 이상 쓸 일이 없는 지식 교육의 일부를 덜어내고 인권과 인성 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젠더화된 사회구조에서 비롯됨을 알고 본질적인 의미에서 양성평등, 성평등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평등으로 가는 길이 이제 겨우 열리고 있나 싶은데 역차별로 인지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현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괴물들은 얼마나 힘이 센가? 우리 안의 괴물을 몰아낼 수 있는 성찰의 힘, 그것이 시작이며 근본적인 것이다.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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