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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20 16:32 수정 : 2016.06.20 19:52

대통령님께.

여독은 풀리셨는지요? 얼마 전 대통령께 편지(<한겨레> 4월22일치 왜냐면 ‘핵보다 강한 두 가지 무기’)를 썼는데, 해외순방 등으로 아직 못 읽으신 듯하여 다시 편지를 드립니다.

얼마 전 ‘북한과 대북제재’라는 제목의 국제회의가 있었습니다. 북 핵실험 후 대북제재의 필요성과 효과성을 검증하기 위해 유엔 전문가들과 전세계 학자들,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그간의 제재 효과에 대해 제재 이후 북한 쌀 가격의 변동이 없고 달러 환율도 변화가 없어 큰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1990년대 말 북한 대기근 때 ‘감자국수’와 ‘미역국밥’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일부 효과는 있지만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전반적인 의견이었습니다. 더욱이 북한의 밤 조명 밝기의 변화와 국제 교역자료를 분석한 미국 스탠퍼드대학 이용석 연구원은 제재가 강해질수록 평양 등 대도시, 군사시설, 중국 국경 등으로 모든 자원이 더욱 집중되어 그 외 지역과의 격차가 커진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제재가 기대했던 효과를 가져오기보다는 오히려 북한 지배 엘리트의 권력, 자원 집중을 강화하고 사회 내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원치 않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토론시간에 저는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북한 영유아에 대한 집단 예방접종을 중단한 것도 이번 유엔 제재에 해당하는지, 그래도 되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또 “이번 제재의 목적이 북한 정권의 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하는데, 영유아에 대한 예방접종까지 중단하면 북한 당국이 우리 말을 믿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엔 대북제재 결의 2270’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막지 않고 있으며, 특히 취약계층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발표자들로부터 ‘멋진’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토론이 끝나고 휴식시간에 몇 나라 사람들이 제게 와서 인도적 지원까지 중단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동의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님.

이 토론회는 6·15공동선언 16주년 되는 날에 열렸습니다. 한때 ‘평화’ ‘번영’ ‘통일’을 꿈꾸던 날이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들이 모여 ‘제재’ ‘전쟁’ ‘기근’ 등의 말을 주고받는 날이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대통령님, 한반도에 전쟁이 와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무기는 남북의 평화적 공존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희망’과 ‘따뜻한 포용’뿐입니다. 힘들지만 그것을 시작하는 방법을 저는 압니다. 먼저, 지원을 보류하고 있는 북한 어린이 예방접종 사업의 재개를 허락해 주십시오.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이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위배되지 않고, 오히려 인도적 지원까지 중단하는 것은 결의에 반하는 일임도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어린이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대통령님께서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약속했던 내용이고, ‘5·24 제재조치’에도 해당하지 않는 내용입니다.

부디 어른들 싸움 때문에 통일 한국의 미래 씨앗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그들 마음속에 “어린이들에 대한 예방접종까지 중단했다”는 분노가 자리잡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무엇보다 남북 어린이를 보듬어 안는 ‘따뜻한 지도자’가 되어 주십시오. 그럼 ‘반가운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사회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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