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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16 17:33 수정 : 2016.06.16 21:08

이른 아침. 알람을 끄고 아직 어둑한 거실에 앉아 있노라면 신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신문을 주워 오는, 실로 아날로그적인 그 시간으로 일상은 시작된다. 짧은 등교 시간 동안 신문 두 부를 완벽히 읽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허둥지둥 단추를 채우며 못 읽은 부분을 책가방에 쑤셔넣는다. 매일 통학버스에서만 한 시간을 보내지만, 신문을 읽는 대신 친구의 페이스북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다. 모르는 사람들의 셀카, 최신 영화들의 후기, 눈살 찌푸려지는 혐오성 게시글까지. 온갖 휘황한 정보를 엄지 하나로 탐독해가는 친구 옆에서 나는 가방 속 비효율적인 활자 뭉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자주 면박을 당한다. 분명한 건 ‘뒤로 가기’가 어디 있느냐고 묻거나 느닷없이 화면을 꺼뜨리는 건 그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다. ‘풀HD 장착, 64GB’의 스마트폰이 주머니를 꽉 채운 감각에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다. 그런 날 완전히 미개인 보듯이 하는 친구들 앞에서 찌질한 자기변호는 들어먹히지 않는다. 그리고 거리에서 들려오는 아이돌 신곡에 으레 따라붙는 물음. ‘너 레드벨벳은 아냐?’ 아날로그 인간의 슬픈 운명이다.

가족들도 들어주지 않는 변명을 해보자면, 내 구닥다리 성향에는 엄연히 선택권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몇십분 쥐고 놀다 보면 스마트폰의 기본적인 기능쯤은 파악 가능하다. 가입해둔 커뮤니티 사이트도 몇개 있고, 엑셀 같은 응용 프로그램도 곧잘 쓴다. 그러니까 나는 1과 0 사이 디지털 월드에서 길을 잃은 어린양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날로그의 비효율성은 삼삼하고 단순한 매력이 있다. 아니 마력에 가깝다. 가령 스도쿠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나는 심심하면 스도쿠를 푼다. 고심 끝에 맞는 숫자를 찾아내는 순간, 힘이 들어간 필체는 역동적이다. 정답을 확인한 후에는 백점 맞은 꼬마처럼 의기양양하다. 그런 스도쿠를 처음 모바일로 접했을 때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조금만 막혔다 하면 멍하게 힌트를 터치해댔고, 나중에는 아예 오답을 입력하면 진동이 울리는 것을 이용해 마구잡이로 숫자를 집어넣었다. 몇차례의 감흥 없는 승리 끝에, 나는 종이로 되돌아왔다.

핏줄처럼 역동하는 세상은 매일 새로운 것들을 잔뜩 뱉어낸다. 혈류에 휩쓸리기 벅찬 아날로그 인간들은 꽉 막혀 정체된 잉여 적혈구쯤 되려나. 아쉽게도 인류의 혈관은 나날이 뻥뻥 뚫려가는 중이다. 60초도 길어 6초 정도의 짧은 동영상이 인기를 끈다는 마당에 ‘나들’은 순순히 도태되는 수밖에 없다. 공연히 러닝타임 200분의 다큐멘터리를 틀어두는 게 내 마지막 발길질이다. 이런 빈정거림은 왜 이렇게 낯부끄러운가.

신조어와 유머로 능청스럽게 다가오는 게시글보다 단려하게 정제된 기사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젊은 아날로그 인간들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이러다 아예 시대에서 밀쳐질까 늘 조마조마하다. 별종 소리 듣기 싫어 성향을 감출 때마다 나와 아날로그는 같이 서럽다. ‘매콤한 세상, 살기라도 담백하게 살자는 게 뭐가 문제냐.’ 나는 그렇게 뇌까리면서 미뤄둔 스도쿠를 꺼낸다. 답을 확인하는데, 이런. 숫자가 엉망진창으로 틀려 있다. … 아날로그도 가끔 이렇게 얼얼하다.

장주옥 고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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