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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내 돈이라면 이렇게 투자하겠는가 / 류영재 |
스튜어드십 코드(SC. 이하 에스시) 도입과 관련한 논란이 분분하다. 이미 도입되었어야 할 에스시 도입이 지연되는 배경에는 전경련을 위시한 기업들의 반발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SC가 무엇이기에 그들은 이렇게 반발하는가. 원래 ‘스튜어드’(steward)는 청지기라는 뜻이다. 주인의 재산을 대신 관리하는 청지기의 제1 덕목은 주인의 이익을 위해 재산을 성실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흔히 수탁자라고 불리는 기관투자자들이 바로 청지기다. 이들은 투자자산을 운용할 때, 늘 이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내 돈이라면 이렇게 투자하고 관리하겠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청지기 자격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수십년간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운용자산 규모는 비약적으로 늘었다. 다양한 펀드들이 출시되고, 공적연금이나 기업연금도 천문학적인 규모로 커졌다. 그만큼 국내에 많은 스튜어드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수적 성장에 비해 스튜어드십에 입각한 운용 철학의 담론 수준은 낮은 실정이다. 그 실행 수준도 초보적이다. 2015년 정기주총 의결권 행사 현황을 보면, 경영진 제안 안건에 대해 국내 기관들은 거의 대부분 찬성표를 던졌다. 자산운용사들의 반대율은 1.8%, 보험사는 0.8%, 그나마 국민연금이 14%였고, 해외기관인 캘퍼스는 12%, 에이피지는 21%로 대조적이었다. 여기서 다시 질문하겠다. “내 돈이어도 그렇게 무조건 찬성했겠는가?”
이러한 찬성 일변도의 배경에도 역시 재벌 대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다. 즉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은 재벌들의 계열사이거나 그들과 거래관계를 맺고 있다. 이렇다 보니 그들에 부여된 청지기의 제1 덕목, 즉 고객 이익 최우선의 원칙은 쉽게 훼손된다. 고객과 재벌의 이해가 상충되면, 거의 대부분 후자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작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에 대해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 그 대표적인 증거다. 여기서 스튜어드십이나 수탁자 책임은 언감생심이다.
이번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의 에스시 도입 반대 이유들을 보면 일견 타당성이 있다. 그들의 논거를 보자. 첫째, 에스시 도입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동의나 사회적 합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이 작년 12월 관련 공청회에 패널로 초청받고도 불참한 이유를 먼저 밝혀야 한다. 둘째, 투자자의 의결권 행사가 기업 경영성과와 연결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주장이다.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는 법으로 정해진 권리이자 의무로서 경영성과를 차치하고 성실히 행사되어야 한다. 셋째, 일본, 영국 등에서 도입한 에스시의 실효성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실증연구들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향후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균형 있게 분석하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넷째, 의결권 자문사 의존 현상과 자문기관의 독립성 문제다. 맞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성을 갖춘 의안분석 기관을 육성해야 한다. 미국 하원도 지난달 의안분석 기관들의 독립성을 중시하여 평가 프로세스와 방법론의 공개, 이해상충 여부 등의 조건을 갖춰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하도록 하는 의결권 자문회사 법(Proxy Advisory Firm Act)을 발의했다. 미국 역시 의결권 자문기관의 필요성을 법적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적절한 규제를 통해 관련 분야의 건전성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시민의식을 전제로 한 국민의 투표권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듯 청지기 정신에 기반한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 등은 주식회사 제도의 본령이다. 이 본질을 회복하려는데 역기능의 침소봉대로 자꾸 길을 막으면, 흡사 독재자들의 정권 연장을 위해 민주주의 길을 막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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