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6.13 19:33 수정 : 2016.06.13 23:20

“대법관에게도 청탁이 들어오는가요?” 어떤 시민단체 간부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청탁’은 없지요. 그냥 기록 좀 꼼꼼히 검토해 달라고 합니다.” 대법관을 지낸 분이 법조계의 청탁 관행을 에둘러 지적한 것이리라. 그런데 이런 행위가 시행을 앞둔 청탁금지법의 통제 대상인 ‘불법 청탁’에 해당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부패는 진화한다. 부패는 꼭 불법적인 것은 아니다. 시간차를 두고, 또 간접적으로 이권과 권력 남용을 주고받는 이른바 ‘전관예우’란 이름의 내용적 부패가 우리 사회에 실재한다. 최근 드러난 부장판사나 검사장 출신 변호사 등에게 법조 로비를 기대하고 100억원대의 거액을 건넸다는 사건도 다들 부패 혐의로 수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잘한 변호사법 위반이나 탈세 혐의만 받고 있다고 한다.

법조비리를 넘어 원피아, 해피아, 방피아, 이제 메피아까지 전관예우의 일각이 드러나고 있다. 사실 직접적으로 뇌물을 주고받는 일차원적 부패보다는, 이처럼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는 고차원의 지능적인 부패가 훨씬 더 규모도 크고 심각한 폐해를 끼친다.

국민 대다수의 행복 대신 특정 소수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른바 권력을 남용한 ‘정책포획’이나 ‘국가포획’(state capture) 현상도 합법의 탈을 썼을 테지만 본질적으로는 부패임이 분명하다. 한국투명성기구로부터 2012년 투명사회상을 받은 영화 <맥코리아>에는 정책포획의 사례들 가운데 하나로 서울시 출신 간부들과 서울지하철 9호선에 얽힌 이야기가 등장한다. 2013년 같은 상을 받은 <한국방송(KBS) 파노라마 그들만의 리그, 부패 네트워크> 또한 핵발전, 금융, 세무, 법조 등 영역에서 통제 기관과 그 통제 대상을 오가는 회전문 인사 등의 ‘시간차 부패’의 단면을 잘 보여주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는 2008년 5.6점(10점 만점)에서 2015년 56점(100점 만점)으로 그대로 머물러 있다. 말단의 작은 부패를 탓할 일이 아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은 이제 옛날이야기일 뿐이고, 우리 사회에서 아래는 맑아지고 있으나 위는 더 탁해지는 이중성이 도드라지고 있다. 그 까닭은 바로 합법으로 포장된 내용적 부패가 창궐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세월호 침몰 당시 구조 전문 함정 ‘통영함’을 무용지물로 만든 까닭은 1970년대 건조된 평택함 수준에 불과한 2억원 상당의 음파탐지기를 무려 41억원에 사들인 방산비리였다. 그렇지만 군 내부의 비리를 제보한 진정한 군인들은 철저하게 보복당하지 않았는가? 오히려 이런 비리를 ‘생계형’이라 감싸는 일까지도 있었다. 그 와중에 총알에 뚫리는 방탄조끼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이제 방산비리는 이적죄로 최고 사형까지 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겠는가?

무리한 민간위탁과 외주화 추구, 그리고 기득권의 유지 강화라는 비리구조 언저리에서 초인적 업무로 고통받던 한 젊은 생명이 스러져 간 것이 스크린도어 참변이다. 2004년 12월부터 무려 24년 넘게 스크린도어와 관련한 독점적 시설운영권을 누리고 있는 다른 업체는 사업자 모집공고를 내기 불과 5개월 전인 2003년 10월 설립되지 않았는가?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의 지적처럼 이웃들의 안전과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탐욕만 앞세운 결과가 바로 세월호 참사, 스크린도어 참변으로 이어진다. 세월호특별법의 개정으로 진상을 규명하는 일과 아울러, 진화하는 지능적 부패를 포함한 온갖 형태의 내용적인 부패를 제대로 통제하는 일이야말로 이러한 참극의 재발 방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진실 규명과 부패 극복 없이 안전사회 없다.

김거성 경기도교육청 감사관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