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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전업주부 죄인 취급하는 보육정책 / 김은아 |
몇 년 전, 처음 어린이집 무상 이용 정책이 나왔을 때 어린이집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겼다. 언론은 그 원인으로 ‘전업주부’들을 가리켰다. 한가한 전업주부들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편히 지내느라 일하는 엄마들이 피해를 본다는 식이었다.
전업주부가 무슨 동네북이라도 되는지, 얼마 전 수정되어 나온 어린이집 무상 보육 관련 정책도 또 ‘전업주부’ 타령이다. 0~2살 영유아를 둔 전업주부들은 기본 하루에 6시간만 이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언론도 발맞춰 부모와의 애착이 중요한 시기에 오히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문제를 막는 취지가 있다고 흘렸다. 이것이 정책인가, 아니면 전업주부의 ‘생각 없음’을 혼내는 훈계인가.
애착이 그렇게 중요한 시기에 ‘돈 버는 일’을 하느라 아이들을 종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은 괜찮고, ‘돈도 안 버는 사람’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종일 맡길 수 있도록 혜택을 주는 것은 ‘낭비’라는 편견 어린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육아 정책이라고 나온 것이, 온갖 집안 대소사에 며느리를 부리면서 “너는 돈도 안 벌고 놀면서 무슨 대접을 바라니?” 하고 아들만 챙기는 못된 시어미 같다(모든 시어머니가 이렇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어린이집이 부족한 것이 전업주부 탓인가? 어린이집이 부족한 것은 말 그대로, ‘어린이집이 부족해서’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어린이집을 확충하라’고 지목되어야 할 곳에 ‘전업주부’들이 내걸렸다. 아이 맡길 곳이 절실한 ‘일하는 엄마들’의 원망을 막아줄 방패막이로 ‘전업주부’를 내세운 정책들을 볼 때마다 입안이 쓰다.
전업주부를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반대말인 ‘노는 사람’으로 보는 사회적 편견을 교묘하게 이용해 부족한 정책을 가리려는 나쁜 의도가 담긴 정책이다. 돈을 받지도 않고, 커리어가 쌓이는 일도 아닌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육아 도움까지 차별하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정책, 전업주부가 해이해질까 봐 노심초사 가르치려 드는 정책이 과연 사람을 낳고 길러내는 육아 정책으로 바람직한가.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 자체로 엄청난 무게를 지닌다. 특히 먹고 자고 싸고 씻는 모든 것을 온전히 챙겨야 하는 0~2살 영유아를 돌보는 전업주부들은 한가하기는커녕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정작 자신의 밥을 지어 먹고 화장실을 가고 씻고 자는 생존에 필수적인 것도 제때 챙기지 못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허공에 발 딛고 사는 것처럼 하루하루 삶이 고달픈 직장 다니는 엄마들처럼 집에서 아이를 제 손으로 키우는 엄마들도 남편, 친인척, 사회의 도움 없이는 숨 막히게 힘들다.
‘푸른 하늘보다 더 높은’ 어머니 은혜를 노래로만 부르고 때우려 들지 말고, 정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만들 수는 없는가. 제발 어린이집을 확충하고 엄마 아빠가 육아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노동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을 담은 정책을 만들라. 더 이상 부족한 국가 정책을 전업주부 탓이라고 전가하지 말고.
김은아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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