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09 19:20
수정 : 2016.05.09 19:20
규제개혁위원회가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해, 담뱃갑 상단에 경고그림이 위치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철회하도록 지난달 22일 권고했다. 경고그림을 상단에 배치할 때 발생하는 금연효과에 대한 입증자료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영세사업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과도한 규제라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금연정책을 단순 보건논리가 아닌 보건과 경제가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정책으로 이해하고 영세사업자들의 입장을 반영한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복지부와 금연단체들은 규개위의 결정에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경고그림을 담뱃갑 상단에 배치하고 진열해야만 청소년 흡연 진입 예방효과가 발생하고, 흡연자들의 흡연 욕구를 감소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내용은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경고그림을 상단에 배치해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사실과 명백히 다르다.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조차도 경고그림 상단 배치를 권고사항으로 규정할 뿐 의무사항으로 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담배규제협약 당사국 180개국 가운데 담배 경고그림이 없는 국가는 56%인 100개국에 달하며,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도 현재까지 담뱃갑 경고그림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또한 담배규제협약 가입국 가운데 경고그림을 상단에 도입한 나라는 51개로 전체 가입국 중 28%에 불과한데, 금연단체의 주장대로라면 전세계 72% 국가가 담배규제협약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복지부와 금연단체들은 규제개혁위원회가 담배판매인들과 담배협회 관계자들의 입장을 청취한 것이 “담배규제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담배업계나 이를 대변하는 조직을 참여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담배규제협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 활동과 관련된 행정규제 기본법에는 규제 심사와 관련해 필요시에 이해관계인과 참고인을 출석시킬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고, 이는 국제협약에 우선한 국내법에 따른 적법 절차인데도 이를 불법인 양 비판하는 금연단체의 주장은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금연규제를 도입할 때 우리나라의 특수성도 고려 대상이라고 본다. 국내의 담배 판매 환경은 유럽보다는 일본과 더 유사하다. 일반 판매점과 편의점에서 주로 판매되고 있는데 편의점의 경우 도시락 등의 일배(일일 배달) 식품의 매출이 매우 높다. 이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잡화점이 아닌 식생활이 가능한 일상공간으로 자리 잡은 편의점의 특성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 조사 결과, 지난 10년간 식당, 편의점 생존율은 19.9%에 불과했다. 그만큼 국내 경제가 많이 위축됐고 영세사업자들 또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데 편의점 매출의 40%에 달하는 담배를 강력하게 규제하면서, 규제가 생계의 문제로 이어지는 영세사업자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정부 정책은 아무리 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다 할지라도 국내 사정에 맞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살펴야 한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 국민 건강을 위한 복지부의 노력과 금연을 위한 정책들은 이미 충분하다. 선진국 논리만을 내세워 지금보다 더 강력한 규제를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보인다. 국민의 건강을 위한 마음은 잘 알겠지만, 부디 넘치지 않길 바란다.
도진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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