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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행복한 학교는 정말 불가능한가 / 황선주 |
교사로 입직한 지 어언 28년이 다 되어 가지만 잊지 못할 가장 큰 슬픔은 두 여학생의 자살이었다. 그중 하나는 재직한 학교에서의 일이었다. 평소 밝게 웃는 편이었지만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해 생을 마감했다. 또 다른 하나는 이웃 여중생의 죽음이었다. ‘공부만 강요하는 학교가 싫다’며 내세를 택한 경우였다. 우리 교육에서는 왜 공부와 성적이 삶을 위한 것이 아닌 죽음의 원인자여야 하는가?
이런 슬픈 일을 목도할 때마다 ‘왜 학생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까’ 자신에게 묻곤 했다. 성적 경쟁과 이에서 비롯되는 학업 부담이 가장 큰 원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학력 지상주의는 대학 입시와 연결되어 있고, 사교육 열풍과 학부모들의 삶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고, 집값 상승과 노후 대비 부족 등으로 나타나 총체적인 사회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하는 때에 철 지난 종이책에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잘 추론해내는 학생들을 우수한 인재로 공인하는 대학 관문을 이대로 두어야 할까? 이렇듯 교육적 개념이 파탄난 부정적인 교육 프레임을 고쳐 22세기 도약의 구름판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먼저 초·중등학교에서 성적 순위 대신 ‘핀란드형 평가’ 제도 도입을 제안하고 싶다. 현재 우리의 중·고교의 평가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나뉘어 있는데, 평가 결과가 모든 학생들에게 공개되어 국·영·수 성적이 저조한 학생들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긴다. 시험 후 며칠만 지나면 아이들 등급이 매겨져 있다. 이러니 일부 학부모는 선행학습으로 아이들의 낙인을 지우려 혼신을 다한다. 다른 특기나 재능은 일절 무용지물에 다름 아니다. 이 때문에 음악이나 미술, 체육 교과를 아무리 잘한들 부수적인 재능으로 치부되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실이다.
이웃 여중생의 깨알 같은 유언이 이를 방증한다. “공부, 공부만 강조하는 학교가 싫다. 문학도 하고 싶고 시도 쓰고 싶은데….” 이런 아이들을 ‘변두리 학생’ ‘잉여학생’으로 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들 피카소 같은 세계적 미술가가 나올 수 있을까? 서열이 아니라 학생들의 성취 정도를 비공개로 알아보고 재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평가제도가 개선되는 것이 ‘교육적’이다.
둘째, 대학 서열을 혁파하기 위해 대학의 이름을 서울 1대학, 서울 2대학, 부산 1대학, 대구 1대학 등으로 하여 대학을 공적 개념으로 바꾸자. 사립대학들 때문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리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또 재능에 따라 자유로이 특성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고,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지 않으면 졸업이 어렵도록 하자. 과거 전두환 정권에서 실패한 경우이지만 공부하는 대학으로 만들기 위한 자구책임을 전제하고자 한다.
셋째, 초·중·고의 특성화 프레임에 변혁을 제안한다. 과거엔 일반고가 대부분이었는데 특목고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자사고, 자공고, 외국어고, 과학고 등으로 서열화되면서 일반고가 ‘열등재’가 되었다. 특성화고는 동일계 진학시스템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외국어고 출신은 외국어계 진학만 하게 하자는 것이다. 과학고도 순수 과학계열로만 진학이 가능하도록 해서 순수과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특목고가 ‘의대 직통로’가 되는 문제점을 해소하여 원래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제도 개혁은 정권 차원에서 해결될 사안이 아닐 것이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이념적 스펙트럼을 달리할 수 있기에 ‘초정권적 차원의 교육개혁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다. 핀란드처럼 정부 차원에서 사회대타협 기구를 대통령 산하에 두어 장기적 로드맵을 구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념적 갈등을 유발하는 인사를 제외한 중립적인 인사로 ‘교육백년대계’의 이상을 구현하면 좋을 것이다. 정치인을 제외하고 핀란드, 뉴질랜드, 독일, 프랑스 교육제도 전문가로 구성하면 정치색이 배제되어 논란거리가 줄 것이다.
매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의 발표를 보면, 우리 교육은 학업은 최상위이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과 개개인의 행복지수가 꼴찌다. 행복한 학교 만들기는 우리의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더불어 공부하고 자신의 미래를 가꾸어 나가는 그런 학교, 가고 싶어하는 행복한 학교를 기성세대가 ‘결자해지’해야 하지 않을까? 왜 이런 행복한 학교가 불가능한가?
황선주 호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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