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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04 20:02 수정 : 2016.05.04 20:02

축구교실에서 자기가 제일 잘한다며 우쭐해 있는 아홉살 아들이 요즘 경기 날을 애타게 기다려 물었다. 그랬더니 새로운 친구가 들어왔는데, 축구를 아주 잘해 자신과 단짝이 되었단다. “그 친구가 평소 아빠랑 축구 연습을 많이 했나 보네”라고 무심코 말했더니 아들이 대답한다. “엄마가 축구 선수일 수도 있지.” 성별, 장애 등 어떠한 고정관념도 없는 아이를 앞에 두고 나의 편견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평소 분홍색은 여자, 파랑색은 남자가 아니고 여자 소방관, 남자 간호사도 있다고 알려주면서 내 아이에게만큼은 고정관념을 심어 주지 않고 있다고 자부했던 내 믿음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른이니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고, 또 얼마나 불가능한 일이었던가? 그동안 그저 나이로 구분해 가르침과 배움의 역할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했고, 성숙함과 미성숙함으로 나누었던 것이 바로 어른들이었다. 또한 어른이라는 자리에서 아이를 훈육과 보호의 대상으로 내려다봤다.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다 자랐다는 착각 때문에 날마다 열심히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 비해 더 미성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방정환 선생의 말대로 어른은 삼십년 사십년 뒤진 옛사람일 뿐이고, 아이들은 우리보다 앞선 새사람이다. 낡은 사람은 새사람의 뒤를 따라서만 새로워질 수 있다. “그대들은 아이들처럼 되려고 애써야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그대들처럼 만들려고 애쓰진 말라”고 한 칼릴 지브란도 아이들을 낡은 사람으로 만들지 말고 낡은 사람들이 새사람인 아이들처럼 되려고 애써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이날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겠다며 선물을 고르고 놀이동산을 향할 것이다. 평소에 방송에서 들을 수 없었던 동요도 몇 차례 방송이 될 것이고, 편성표에 자리잡기 힘들었던 어린이 프로그램도 몇 편 방송될 것이다. 어린이날만큼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배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주는 선물을 받기만 하는 존재, 어른들이 주는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낡은 시간이 쌓여 오래된 생각과 욕심에 사로잡힌 옛사람들에게 새 생각을 선물하고 새 마음을 가르쳐줄 수 있는 존재이다.

인생의 멘토 찾기에 여념없는 시대에 진정한 어른이 없다고 우리는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바로 내 옆에, 우리 집, 우리 마을에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존재가 있다.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깨끗한 마음을 배우려고 할 때 우리 어른들의 생각에 다시금 윤기가 날 수 있다. 방정환 선생은 ‘어른들에게 쓰는 글’에서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 주시오’라고 당부한다. 이제 어린이날을 어린이를 올려다보는 날, 어린이들처럼 되려고 애쓰는 날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여승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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