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5.02 19:18 수정 : 2016.05.02 19:18




<한겨레> 4월29일치 특별 기고 ‘말일파초회 고간찰 연구 18년’에서 유홍준님은 한글 전용을 할수록 한자 교육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인의 경험이고 생각이라면서 한자를 알면 우리가 쓰고 있는 단어의 의미와 유래를 명확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지는 명확지 않으나, 중·고등학교 한문 교육의 필요성은 분명히 주장하였다.

먼저 한글 전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살펴보자. 한글 전용은 단순히 우리말을 한글로만 적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한글의 실용성과 대중성을 생각할 때, 이는 오늘날 당연한 것이 되고 있다. ‘말일파초회’식의 이름 붙이기는 삼가야 하리라 본다. 이 말을 한자로 적어도 ‘달마다 마지막 일요일에 초서를 격파하기 위해 모인다’는 뜻으로 곧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런 새말은 우리말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식의 새말을 앞으로도 만들어간다면 한자를 끝내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유홍준님이 한글 전용에 찬성하며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항시 고민하며 글을 쓰고 있다’면 ‘고간찰’도 ‘옛 편지’로 바꾸어 쓰는 게 나을 것 같다.

한글 전용은 자연스런 역사적 흐름이 되었다. 한글같이 빼어난 글자를 제대로 부려쓰지 않고 500년이나 묵힌 이유를 생각할 때 이런 변화의 의미는 무척 크다. 한글문화를 억눌렀던 강력한 모화사상의 무게를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 한문과 유학을 숭상함으로써 조선 역사가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는 신채호의 주장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일본과 견주어 보면 조선에서는 과거제도가 정착함에 따라 엄격한 중국식 한문 쓰기가 뿌리를 깊게 내렸다. 모화와 귀족적 특권 의식이 결합한 글쓰기 방식으로 이는 곧 언문 천대로 나타났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글쓰기 문화가 일찍부터 뿌리내려 기록 문화의 유산이 우리보다 훨씬 풍부하다. 한자에는 대부분 훈독법이 있어 가나와 한자의 관계가 그리 배타적이지 않다. 한문을 대부분 훈독하므로 한문은 그대로 일본어 번역문이 된다. 한문을 대하는 이런 조선과 일본의 차이는 조선 학문과 일본 학문의 차이와 닮았다. 조선의 유학이 주자학 일색으로 획일적이고 교조적인 반면 일본의 학문은 조선보다 다양했다. 1719년 통신사 일행의 제술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신유한은 일본은 공문서에 가나를 광범위하게 쓰고 있으며, 서점에 고금의 서적과 백가의 문집이 간행되어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그때까지 조선에는 서점이 없었다. 출판과 서적 유통에서 조선은 일본과 경쟁 상대가 못 되었다. 신유한은 또 일본에는 과거제도에서 오는 표절의 해악이 없어 공부가 성실하며 연구가 심오하다고 평했다. 엄격한 중국식 한문 쓰기의 폐해는 엄청났다.

한글 전용은 먼저 과거의 우리 학문과 교육이 한문 읽기와 쓰기와 동일시되던 시대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한글 전용은 교조적인 한문 쓰기로 상징되는 모화사상, 지배층의 정보 독점을 깨뜨린 쾌거다. 한글만 쓰기는 단순히 실용적인 면에서 읽고 쓰기에 효율적이란 차원을 훌쩍 넘어간다. 나날의 삶에서는 한자를 쓰지 말고 적어도 초등 교육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한자 교육을 하지 말아야 그 깊은 뜻이 살아 있게 된다. 일본과 달리 우리에게는 한자와 한글은 서로 배타적이었다. 흔히 말하듯 새의 양 날개가 될 수 없다. 초서체 한문 연구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한자 교육, 또는 한문 교육의 확대를 주장한 유홍준님의 글은 특수 분야 전문가의 체험을 모든 분야로 성급하게 일반화한 것이다.

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부경대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