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4.28 20:12 수정 : 2016.04.28 20:12

갑옷처럼 단단한 나무껍질을 뚫고 돋아난 여린 새순과 화사한 봄꽃이 어우러진 봉의산은 아름답다. 그 봉의산 자락에는 봄 햇살에 탈색된 흰색의 강원도청 건물이 중세 유럽의 성처럼 웅장하게 서 있고 도청 맞은편 도로 한쪽 구석에는 검게 그을린 50대 남성들이 열흘 넘게 쭈그리고 앉아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말쑥한 도청 공무원들은 찬바람을 일으키며 지나치고 노동가요가 울려퍼지는 방송차의 소음과 시름 많은 노동자들의 마음은 봄볕에 갈 곳을 잃고 거리를 헤매고 있다.

지구촌 축제라는 평창겨울올림픽 중봉 알파인 스키장 건설현장에서 2015년 9월부터 일하고 체불을 당한 노동자들이다. 체불 금액은 30억원이 넘는다. 중국 하얼빈 빙설축제를 평창에 유치했다며 강원도지사, 강원개발공사 사장, 강원도 도민회장, 시행사 회장 등 100여명이 참석해 개막식을 연 평창 빙설대세계축제 현장에서 11억원의 체불을 당한 노동자들은 화려한 축제가 막을 내린 뒤 임금도 못 받고 거리로 내몰렸다.

발주처인 강원도를 비롯해 원청, 하청업체 그 누구도 농성장에 와서 문제를 논의하자고 나서지 않는다. 관청은 내 책임이 아니라 하고 건설사업주들은 줄 돈이 없다고 한다. 적자 공사면 공사를 포기해야 할 텐데, 공사는 자신들이 해야만 한다고 한다. 장비임대료 체불을 2월까지 해결하겠다고 도지사와 작성한 합의서는 이면지로나 쓸 처지다.

노동자들은 할부금을 못 내 생계수단인 덤프트럭을 캐피털 회사에 빼앗기고, 아이들은 등록금이 없어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생업 전선에 나서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법질서 준수를 강조했고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체불 사업주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도 중앙정부가 발주한 원주~강릉 철도공사,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발주한 도로공사, 강원도에서 발주한 겨울올림픽 경기장 등에서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수백억원의 체불이 발생했지만 구속된 체불 사업주는 단 한 명도 없다. 일한 임금을 달라고 농성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머잖아 집시법 위반 통지서가 날아들 것이다.

체불은 정부가 발주한 공공공사 현장에서 더욱 극심하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엄연히 현행법으로 체불을 막을 수 있는 장치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건설기계의 경우 건설기계장비 대여대금 보증제도라는 것이 있다. 현장에서 보증서를 매일 발급하고 체불이 발생하면 보증기관에서 체불금액을 우선 지급하는 제도이다. 보증서 미발급 시 6개월 이하 영업정지, 또는 1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보증기관에서는 발주처에 매월 보증서 가입 현황을 통보해준다. 공무원들이 의지만 있다면, 보증서 발급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보증서 미발급으로 처벌을 받았다는 보도는 들어본 적이 없다. 법은 힘없고 가난한 자들에게만 엄격하다.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공무원 선서문이다.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국민이 누구인지, 법은 누구에게 적용되는 것인지. 언제까지 강 건너 불구경하실 건지. 당신들도 월급 안 받고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지.

지구촌 축제! 평창겨울올림픽은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며 어마무시한 홍보에 나설 것이며, 정치인·기업인 등 저명하신 분들이 참석해 화려한 개막식을 열 것이다. 농성장에 밤이 찾아온다. 농성장은 오늘 밤도 술에 취해 빨갱이, 종북세력들이라며 시비 거는 애국자들과 실랑이를 벌어야 한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오늘도 밀려드는 분함에 소주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오희택 건설노조 강원건설기계지부 정책부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