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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18 21:42 수정 : 2016.04.18 21:42

“본 것이 적은 자는, 해오라기를 기준으로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기준으로 학을 위태롭다고 여기니 그 사물 자체는 본디 괴이할 것이 없는데 자기 혼자 화를 내고 한 가지 일이라도 자기 생각과 같지 않으면 만물을 모조리 모함하려 든다.”(연암 박지원, <능양시집서>, 1772년경)

18세기에도 2016년 4월16일 충청북도교육청에 난입한 무리들처럼 딱한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그들은 본 것이 적어서인지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존중과 배려의 정신을 기반으로 화합과 소통의 약속을 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여겼다. 도대체 이들은 ‘충북교육공동체 권리헌장’의 초안을 몇 줄이라도 읽어보고 나온 것인지, 계속해서 이 권리헌장이 ‘동성애를 조장하며’, ‘수업 중 휴대전화를 마음껏 쓰라고 했으며’, ‘미혼모를 부추긴다’고 고함을 쳤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고함만 쳤다’는 사실이다. 주장은 타당한 근거를 요구하는 논리적인 의사표현 방식이다. 그러나 그들은 권리헌장에서 단 한 줄도 예를 들지 못했으며, 구체적인 조항과 표현의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너는 자식이나 있느냐?’ ‘동성애에 빠진 우리 아들 구해내라’고 고함치거나, 입에 담기에 낯 뜨거운 표현으로 미혼모를 모욕하는 말들을 쏟아낼 뿐이었다. 이들은 세월호 추모 배지를 달고 있는 이들을 골라 삿대질을 하며 악담을 퍼부었으며, 토론회장에서 난동을 부렸다. 결국 현장에 있던 일부 청소년들은 난생처음 목격하는 추태와 광란에 눈물을 쏟고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이들의 광기 어린 행동에 대해 여타 언론들이 일제히 ‘충북교육청’과 ‘보수단체’의 대립 양상으로 보도한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 우리 전통문화에서 추구하는 품위와 예의를 상실한 이들을 보수단체로 묶는 것은 상식과 윤리에 기초한 보수단체들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심지어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과 충청북도 도의회 혹은 도의원이 뜻을 함께하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했는데, 대의민주주의로 지위를 얻은 정치인으로서 이렇게 상식과 이성을 상실한 집단과 동류인 것이 정녕 사실이라면 오히려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난동에는 아이러니한 점도 있었는데, 이들이 ‘교권 추락’이 우려된다고 자주 외친 것이다. 교권 추락을 걱정하는 그들은 이 토론장이 교육공동체에게 또 다른 배움과 성장의 장이었음을 완전히 망각한 듯했다. 학교 현장의 다수 교사들이 이 헌장을 지지하는 것은, 단지 이 헌장이 대한민국의 각종 인권보장법안을 토대로 작성되어서만이 아니다. 교사들이 조금 불편하고 더딜지라도 진정한 교육이 일어나는 장을 한 발씩 넓혀가겠다는 선언이기에 지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상처와 오해를 낳았던 학교 문화를 반성하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학교를 만들자는 약속이기에 지지하는 것이다. 교사들 스스로 모순된 권위를 내려놓고 제자들과 진솔한 만남을 이루겠다는데 ‘교권 추락’이라는 말로 이간질하지 말라. 그리고 온갖 추태로 우리 아이들 마음에 낸 상처에 사과하라. ‘반면교사’라는 말도 있지만, 그들은 우리 학생들의 가슴에서 이미 어른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 일부를 훼손시키고 말았다.

김은영 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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