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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13 23:51 수정 : 2016.04.13 23:51

최근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이를 문제제기하기보다는 그저 참아 넘겨 버린다고 한다. 드러나는 숫자의 네 배 가까운 피해는 아무도 모르게 묻힌다는 뜻이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대학 내 성희롱의 경우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 내 성희롱의 경우, 이를 문제제기하기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진입 장벽이 있다. 대학 내에서 학생 간에 성희롱 사안이 발생하면 피해 학생은 그 사실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정답은 ‘할 수 없다’이다.

우리 법은 일반적인 성희롱을 형사범죄로 규율하는 대신,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의 영역에서 다루고 있다. 가해자에게 성희롱에 따른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민사소송 또는 국가인권위원회, 그밖의 자체적인 징계위원회 등의 권리구제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 법은 성희롱을 업무·고용 관계에서 발생하는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협소한 범주에 가둬두고 있고, 그 시야를 쉽사리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조차 제2조 제3호 라목에서 차별시정 대상인 성희롱을 업무·고용 등의 관계에 있는 종사자 등이 행하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금까지 해석을 통하여 차별시정 구제의 범위를 폭넓게 확대하여 왔다. 하지만 교수-학생 간 성희롱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학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는 업무·고용 등의 관계에 포섭되기 어렵기 때문에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릴 수 없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인권위법에서 차별시정 대상인 성희롱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조속한 개선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어떤 관계에서 성희롱이 발생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가 어떤 관계에서 범했든, 성희롱은 여전히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권리구제를 요하기에 적절한 권리구제절차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입법상의 맹점은 인권센터, 성희롱·성폭력상담소 등 각 대학 내 인권보호기관에 의해 메워져야 한다. 대학 내 인권보호기관의 존재 의의와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민사소송에 드는 시간과 비용, 교육·응보적 효과의 실효성 등을 감안하면 대학 내 학생 간 성희롱 사안에서 피해자가 호소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창구는 대학 내 인권보호기관이다.

직장 안팎을 불문한 모든 형태의 성희롱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조속한 개선입법을 촉구한다. 실효적 권리구제를 뒷받침할 인력과 기구의 확충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각 대학 내 인권보호기관의 역할과 권한 또한 지속적으로 강화해가야 한다. 피해자의 보호와 권리구제를 위한 창구는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조속한 개선입법, 그리고 대학 내 인권보호기관의 권한 강화를 위한 각 대학 차원의 실천과 노력이 대학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한 대처와 해결에 반드시 필요하다.

박찬성 변호사, 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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