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4.06 19:39 수정 : 2016.04.08 10:26

“우리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가방을 열어놓고 나가라며 수련회 조교가 한 말이다. 소지품 검사였다. “속옷도 있는데, 어떡해?” “원카드도 안 된대?” 좀 전까지 일장 연설 앞에 ‘앞으로 나란히’ 줄 서 있던, 조금이라도 떠들면 윽박지름을 당하던 우리는 걱정과 불만을 제대로 꺼내놓지 못하고 소곤거리며 강당 밖으로 밀려났다. 믿는다면서, 왜?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5분쯤 바깥에 멍하니 있었던가, 다시 강당으로 돌아와 누가 헤쳤는지도 모를 가방을 다시 꾸려 닫았다.

이것은 3년 전, 중학교 3학년이던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올 3월,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어 에스엔에스(SNS) 지인들은 ‘대통령님! 지금까지 제가 올린 글은 고양이가 쓴 글입니다’ 따위의 드립을 쳤다. 많은 사람들이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으로 ‘의심만으로 정보를 국가기관이 열람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지적했다. 반정부적인 표현을 공개적으로 하면 그것을 핑계로 사찰 대상이 되어, 정부 비판에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 약간 무덤덤했다고나 할까.

청소년인 나는 정보인권이 없다시피 살아왔다. 학교는 핸드폰을 담아둘 전용 가방을 구매해가면서까지 우리의 핸드폰을 매일 압수했다. 핸드폰은 메신저 대화 기록과 메모, 사진이, 스마트폰이라면 거기에 검색기록과 로그인 정보까지 나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이 저장되는 작은 컴퓨터나 마찬가지다. 또 학교 안팎 사람들과의 가장 편리한 연락수단이다. 쉬는 시간은 화장실 가고 수업준비 하기에도 짧고 자유시간은 없다시피 하다. 학생의 다른 반, 학년 교실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학교도 상당수다. 그러니 핸드폰을 뺏기면 학교가 끝난 후나 휴일의 약속을 학교에 있는 동안은 정할 수 없게 된다. 동아리문화, 학생참여활동이 사장되고 학생들의 친구관계가 같은 반 안으로만 좁혀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굳게 믿는다.

지난 2013~14년 서울의 11곳 학교에서 ‘아이스마트키퍼’라는 스마트폰 감시통제앱으로 학생들의 스마트폰을 학교가 한꺼번에 관리하는 방식의 사업이 시범운영되었다. 교육청에서는 사업을 접었지만, 학교의 앱 사용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4월부터 만 16살 미만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을 개통함과 동시에 유해 매체물 차단 앱을 깔게 되었다. 만 16살 미만이 아니더라도 독자 계약이 불가능한 청소년은 친권자/부모의 의사에 따라 앱을 깔게 된다. 어떤 매체물이 유해한지는 당연히 높으신 어른들이 정해서 떠먹여주지 우리가 판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동갑 지인은 카톡으로 ‘○시 발송되었습니다’라고 보냈다가 ‘시 발’을 앱이 욕설로 인식해서 부모에게 문자가 보내졌고, 밤늦게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던 게 들켜 혼이 났단다. 어떤 친구와 어울리는지, 연애를 하는 건 아닌지 알기 위해 메신저, 통화 내역 등을 검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범죄를 저질렀으리라 의심되는 경우에도, 의심만으로는 함부로 압수나 검사 등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은 것이 ‘영장주의’다. 한국은 이전에는 반쪽만 영장주의였고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이제는 그 반쪽조차 아니다. 학교에서 핸드폰 빼앗기고 소지품 검사당하고, 이건 아니다 싶은 것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삭이며, 학교폭력 의심 문자가 가서 대화 내용을 검사당할까봐 쩔쩔매는, 자신에게 유해한 콘텐츠와 유해하지 않은 콘텐츠를 스스로 감별하고 제어할 능력도 없다고 낙인찍힌, 테러방지법 이전부터 감시와 통제를 받아온 우리는 한국의 청소년이다.

이경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