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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어른들은 알고 어린이는 모른다고요? / 이찬우 |
지난 3월26일치 <한겨레> 토요판에 재밌는 글이 실렸다. 한동원 영화평론가는 칼럼 ‘어린이들도 사회를 알 나이?’에서 이렇게 썼다. <주토피아>를 보는 “어린이 관객들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의 반도 소화 및 흡수하지 못할 것”이란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은유를 어린 관객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란다. “아동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 이해하면 곤란하기까지 한 농담”이라고도 했다. 거기에 정점을 찍어주신다. “15세 이하 웬만하면 반액 할인.”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아니, 대체 어린이들이 이런 철학적이며, 정치적이고, 은유적인 영화를 무슨 수로 이해한다는 말인가. 이런 영화를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로 어린이 관객들이 잔뜩 보는 건 부당한 일이다. 어차피 이해하지도 못할 텐데. 그래. 어차피 이해하지도 못할 영화, 반값 할인이라도 해주자.
같은 논리라면 이 영화를 본 ‘어른’들은 이 영화를 모두 이해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영화에 깔린 섬세한 비유와 은유를, 패러디와 그 원전을 말이다. 주디가, 닉이 미국의 인종적 지도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밤의 울음꾼이 의미하는 바와 <브레이킹 배드>나 <스피드>, <대부> 같은 영화들에 대한 인용까지. 어른들은 온갖 사회적 배경은 물론, 영화적 맥락까지 다 알고 있으리라. 어른이니까!
아쉽게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인터넷 반응만 봐도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이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영화였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영화, 그뿐이었을 테다. 나 역시 영화에 등장하는 비유와 은유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럼 나도 영화비 할인해주는 건가. 궁금하다. 내 영화적 이해도는 이코노미인가, 아니면 프라임인가.)
영화조차 그럴진대, 어른들이 사회를 완벽히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나이와 사회를 보는 시선은 별로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 대한 이해도는 오로지 개인의 경험, 지식과 맞닿아 있다. 세상은 다중역할수행게임(RPG)이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자동으로 경험치를 전수받지 않고, 나이가 어리다고 얻을 수 있는 경험치에 명시적인 제한이 걸려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어린이의 영화 감상에 대해서조차 가타부타 할 수 있는 건, 나이 많은 이의 기득권에 불과하다.
흑인은 폭력적이다. 아시아인은 수학을 잘한다. 여성은 분홍색을 입어야 한다.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다. 중국인들은 돈밖에 모른다. 성폭력을 당하는 이유는 당할 만한 짓을 해서 그렇다. 지적장애인은 위험하다. 우리는 이것을 편견, 또 선입견이라고 부른다. 나이가 어리면 어떻다거나, 나이가 많으면 어떻다는 것 역시- 그저 편견, 또 선입견에 불과하다.
아쉽지만 한동원 평론가 역시 <주토피아>를 제대로 본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의 핵심 테마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선입견과 차별’이다. 그는 어린이들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모두의 평화로운 공존’이 이뤄지기라도 할 듯 썼지만, 아니다. 그것은 그저 소수에 대한 선입견을 퍼뜨리고 그에 대한 다수의 호응을 끌어내려는 것처럼만 보인다. <주토피아>의 주제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나이라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에 대해 야유를 날리지 않을 수 없다.
혹시나 해서 한마디를 더 한다. 만약 한동원 평론가의 글이 이런 편견을 비꼬기 위한 농담이라면, 이는 실패한 농담일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말이다. 글을 읽는 누군가가 웃기는커녕 불쾌해하기만 하지 않았나.
이찬우 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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