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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성곽과 삶이 함께하는 문화 / 추은경 |
서울 지하철 약수역에서 성곽길에 이르는 다산동 수천 가구는 성곽과 함께 살아간다. 조용하고 편리하여 살기 좋은 다산동 일대는 2~3세대에 걸쳐 수십년째 살고 있는 토박이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건물들의 모습은 새로워졌지만 골목골목의 모습은 40여년 전 어릴 적 그대로다.
특히나 우리 동네는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조용한 주택가가 있나 싶을 정도로 한적한 곳이다. 막다른 지역이라 외부 차량도 드나들지 않아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동네 어귀는 어르신들이 나들이 삼아 즐겨 찾는 시골 마을 같은 곳이다. 동네 입구까지의 골목은 좁지만, 3년 전 화재 이후 불법주차를 하지 않아 화재 안전도 확보된 상태여서 더욱 안심하며 살고 있다. 약수역은 강남 강북 할 것 없는 교통의 요지여서 차 없이 살기에 충분하다. 주차를 할 수 없어 차량을 구입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중구는 성곽 옆길을 주거용으로만 써서는 안 된다며 개발을 시작했다.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에 걸맞은 문화 예술의 거리로 탈바꿈한다는 포부를 갖고 말이다. 또한 관광객을 골목 깊숙이 유입시켜 관광 콘텐츠로 개발한다고도 하였다.
그 방법으로 성곽길 초입, 중간, 끝 세 지점에 거점시설을 만들기로 하고, 이미 끝 지점에는 공영주차장과 함께 문화시설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그리고 최대 핵심사업인 중간 지점에 공영주차장을 짓겠다며 우리 동네를 강제수용하려 한다. 주차장이 포함되면 공익이 되고, 공익을 앞세우면 강제수용에도 법적 문제가 없음을 이제야 알았다. 아무것도 몰랐던 주민들은 순식간에 법적 절차를 밟은 중구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유네스코 등재나 문화재 보존을 위해 성곽길을 정비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주차장을 만들어 성곽 길가의 차들을 정비하는 것 또한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수십 가구의 보금자리를 빼앗아 꼭 우리 동네에 주차장을 지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주차난 때문이라면 주변의 민간 주차장을 매입하여 주차 건물을 만들 수도 있다.
40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나는 주택 용도를 변경하고, 예술가들을 모집하는 것이 아닌, 성곽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문화이며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평화롭게 살고 있는 온전한 주거지인 이곳을 관광지로 탈바꿈한다는 생각 또한 주민을 배려하지 않은 발상이라 생각한다. 요즘 우리는 ‘뜨는 동네’의 병폐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골목 구석구석에 불쑥 들어오는 낯선 사람들, 카메라, 소음, 취객, 쓰레기,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 등은 원주민을 위협한다.
우리의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이런 식의 일방적인 개발이 아닌 주민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두를 위한 개발은 함께 찾을 수 있다. 또한 공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다산동 주민들은 성곽길을 사랑한다. 살기 좋은 내 고장 중구를 자랑스러워 한다. 차를 살 수 없어서, 열악해서가 아니라 중구를 사랑하기에 나는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를 없애 하나를 만드는 식이 아닌, 주민과 상생하는 지역 개발을 기대한다.
추은경 서울 중구 다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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