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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즐겁고 신나게 투표하는 날을 꿈꾸며 |
오는 4월13일에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한다. 언제부턴가 선거 무렵이면 힘이 빠지고 짜증이 난다. 그나마 덜 나쁜 사람에게 투표를 하자고 다짐을 한다. 이 나라를 이끌려는 사람들은 백성을 하늘같이 받든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벌리면서 정작 뽑히고 나면 제 뱃속을 채우는 일만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 아들은 새벽에 일어나 유럽축구를 보고 있다. 우리나라 선거도 밤잠을 설치며 떨리는 마음으로 투표를 하는 날을 꿈꾼다.
중미에 있는 작은 나라 코스타리카를 아는가. 그 나라에서는 큰 잔치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월드컵 축구 시합이고, 또 하나는 국회의원 선거다. 지난 월드컵에서 그 나라는 프로축구가 있는 수많은 나라들을 물리치고 8강에 올랐다. 그 나라에서는 돈으로 선수들을 키우지 않는다. 국민들 스스로 몸놀이를 좋아해서 골목마다 모여 공을 찬다. 축구선수가 되었다고 특혜를 주지도 않고, 축구선수들이 꼭 축구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어릴 때부터 민주주의를 배우고 인문, 역사, 교양 공부를 꾸준히 한다.
그 나라에는 군대가 없다. 1948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 자기도 또다른 쿠데타로 정권을 잃을까봐 군대를 없앴다. 미국에 가서 우리가 군대를 없애려고 하니 쳐들어오지 말라고 하니까, 미국 정책입안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유럽에 있는 나라들을 찾아가서 우리가 군대를 없애려고 하는데 미국이 우리를 쳐들어오려고 한다고 고발했다. 미국은 그런 일이 없다고 발뺌을 했고, 지금까지 코스타리카는 군대 없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
코스타리카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집집마다 여러 가지 작은 깃발을 세운다. 아버지가 공산당을 좋아하면 빨강 깃발, 어머니가 녹색당을 좋아하면 초록 깃발, 누나는 파랑 깃발, 형은 노랑 깃발, 9살 난 동생은 보라색 깃발을 꽂는다. 택시, 버스, 승용차에도 이런 작은 깃발들을 꽂고 다닌다. 모든 백성이 자신이 좋아하는 정당을 생각하며 깃발을 휘날린다.
그 나라에서는 국회의원을 뽑을 때 정당에 투표를 한다. 여러 정당이 오로지 정책을 얼마나 잘했나를 가지고 승부를 건다. 미국이나 영국, 우리나라처럼 한두 개 정당이 권력을 독차지할 수 없다. 동성애자를 보듬어주는 정당도, 핵발전소를 모두 없애자는 정당도, 누구나 대학에 들어가게 하자는 정당도, 한 달에 모든 백성에게 50만원씩 주자는 정당도, 군대를 없애고 남북이 하나 되자는 정당도 한 석이라도 얻어 국회에서 일할 수 있다.
코스타리카에서는 대통령 선거 기간이 되면 초등학교에서 모의 대통령 선거를 한다. 어른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연설을 하고 투표를 한다. 나라에서는 그런 일을 도와준다. 어린이들이 먼저 대통령을 뽑는다. 그것은 어른들에게도 반영된다. 이렇게 아이들은 민주주의를 스스로 배우고 어른들을 가르친다. 코스타리카는 500만명이 안 되는 작은 나라다. 한반도 남녘은 5000만이 넘고 남북이 갈라져 있어서 그 나라와 똑같이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삶도 바뀌지 않는다. 투표장에 나가는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려면 ‘테러방지법’같이 백성들을 범죄자로 옥죄는 법을 더 만들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가 새벽에 일어나 축구를 보는 마음으로 투표장에 가는 날이 오리라.
은종복/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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