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2.22 19:24 수정 : 2016.02.22 22:17

에밀리 브론테의 <워더링 하이츠>는 읽다 보면 짜증이 나기로 유명하다. 1부의 주인공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잔혹한 현실과 싸우며 문학사에 길이 남을 강렬한 사랑과 용기를 보여주는데, 2부에 등장하는 자식 세대 캐시와 헤어턴은 편하게 컸으면서 엄살만 많고 사랑도 미지근하게 해서다.

요즘 우리를 보는 어른들이 이런 마음일까 싶다. 청년 세대는 전에 없던 혜택을 누리는데도 자조적인 신조어를 쏟아내고, 어른들은 ‘헬조선’은 진짜 지옥 같던 시절을 안 겪어봐서 하는 말이라고 꾸짖는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하는데 막상 대학생에게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을 물으면 남자는 군 생활, 여자는 군대 간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든다며, 이렇다 할 힘든 경험이 없는 청년들의 삶을 걱정하기도 한다.

어른들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고난의 ‘스케일’이 예전보다 작아졌으니 진짜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은 한쪽 경험을 절대화한 산물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독재 정권과 구제금융을 겪었지만 그 전 세대는 한국전쟁을, 전전 세대는 일제강점기를 겪었다. 그렇다면 아버지 세대는 윗대보다 스케일이 작은 고난을 겪었으니 힘들었다 말할 자격이 없을까? 아니다. 아버지 세대 스스로 ‘우리 땐 힘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똑같이 하고 싶은 말이다. 지금 나, 지금 우리 세대에게 닥친 고통은 언제나 새롭고 날카롭다. 그렇기 때문에 각 세대의 고민은 겉으로 보이는 크기로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역사를 모르고 자기 어려움만 알면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우리는 선대의 노고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는 이전 세대에게서 터전이 되는 들과 탈피해야 할 틀을 함께 물려받기에 세대와 세대가 서로에게 빚지며 사슬처럼 맞물려 가는 것이 역사다. <워더링 하이츠>에서 캐시와 헤어턴은 뼈저린 피해자였던 부모 세대 덕에 더 이상 가난과 가정폭력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지만, 각각 집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새로운 어려움 안에 갇힌다. 대한민국의 청년 세대는 지금 꿈꿀 수 없고, 사랑할 수 없고, 취업할 수 없고, 참여할 수 없다. 2년 만에 잘리지 않는 안정성이 최상의 가치가 되고, 이력서에 득이 되는 것만 취하라는 자기계발 신화가 진리로 유통되고, 고용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이 성장의 과실을 나눠받지 못하고, 젊은층을 대변할 정당이 없는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구조화된 부조리 앞에 많은 청년들이 천 번 흔들리다 못해 꺾여버린다.

그러니 속는 셈치고 청년 세대를 한 번만 다시 봐줬으면 한다. 선입견을 잠시 제쳐 두면 걱정과 달리 청년들의 인격 성숙에 도움이 되는 어려움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것을, 정말로 걱정해야 할 건 이런 어려움을 양산하는 구조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변화할 가망이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워더링 하이츠>의 경우에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넓은 눈으로 다시 읽은 독자만이 캐시와 헤어턴 고유의 그늘과 매력을 발견하고 고전을 더 깊게 음미할 수 있다. 덤으로 덧붙이면 작중에서 결국 ‘폭풍의 언덕’에 평화를 불러오는 건 칠칠치 못해 보이던 캐시와 헤어턴이다.

김윤철 서울 동작구 상도동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