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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26 19:32 수정 : 2015.10.27 10:12

영화 베테랑 스틸컷. 사진 쇼박스 제공

[왜냐면] 영화 ‘베테랑 ’유감/지미 스트레인 인디뮤지션

서도철은 법 위에 올라선 범죄자를 법 밖의 방법으로 심판하지 않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처벌하려 한다는 점에서 강철중(<공공의 적>, 2002)과 다르다. 그는, 조태오가 가진 권력과 부패한 사회(혹은 사법계)의 한계로 인해 기소를 해도 피해자나 상식적인 대다수 시민이 만족할 만한 ‘단죄’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형사이면서도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자신의 말로 반증되는 ‘가오밖에 남은 게 없’는 법집행기관의 상징이다.

반면에 강철중은 정의를 이루기 위해 법과 원칙을 저버리기도 한다. 인간 같지 않은 놈을 처단하는 데 법과 원칙이라는 게 맞질 않으니 ‘그런 놈에겐 내가 곧 법’이라는 게 강철중의 사고방식이고, 이것은 극악무도한 범죄 뉴스를 보며 ‘저런 나쁜 놈을 살려둬야 하나’ ‘이래서 사형제도가 필요해’라고 느끼는 대중에게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강철중이 ‘의적’처럼 악의 응징을 좇는 데 비해, 서도철은 사법제도에 결함이 많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자신의 힘으로 제도를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잘 알고 있는 소시민이기도 하다. 영화 <베테랑>에는 바로 이것, 누구나 사회가 부패했고 잘못되었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패배주의 혹은 무기력이 가득하며, 몽상적인 대안조차 제시하지 않고 그저 동병상련의 태도로 일관한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현실과 거의 완전히 겹친다. 길 가는 사람에게 ‘묻지 마’ 폭행을 해도 못 본 척 지나치는 사람들과 지하철 문에 사람이 끼어도 구하려 하는 대신 핸드폰을 꺼내 ‘촬영’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현실. 영화는 우리 사회 모든 곳에 존재하는 베테랑들의 군상을 보여준다. 굽실거리기 베테랑, 충성하기 베테랑, 로비하기 베테랑, ‘몸빵’하기 베테랑, 안하무인 ‘갑질’ 베테랑, 변명하기 베테랑, 협박하기 베테랑, 사기 치기 베테랑 등.

하지만 최고의 베테랑은 바로 타인의 아픔과 부정에 대해, 내게 직접적인 피해가 있지 않은 이상 적당히 반응하는 비굴과 내 일이 아니면 금방 잊는 망각의 베테랑들인 ‘불특정 다수’, 바로 우리들이다. 조규환과 조태오는 어느 사회에나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이 계속 생겨나고 늘어나는 현실은 서도철로 하여금 강철중의 꿈을 꿀 수 없게 하는, 우리들 보통사람의 생각과 실천의 결과다.

영화가 계속 이어졌다면 어떨까. 화물차 운전수가 회복된다 해도 조태오 같은 사람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으니 더욱 심한 ‘갑질’의 피해자가 되거나 그럴 기회조차 잃을 가능성이 높다. 조태오는 포토라인에 서서 ‘물의를 일으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식의 말을 하고, 감형과 집행유예 등의 단어가 미디어를 채웠다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는 누구도 조태오나 운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박스오피스를 검색해보니 이 사회에 ‘패배하고 자위하며 안도하고 망각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베테랑’들이 1천만 이상 존재하는 것이 아닌지 씁쓸하다.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를 포기한 ‘오포세대’는 그나마 가스에 중독된 카나리아일지 모른다. 이 사회는 이미 개선과 변화를 포기하고 좌절에 중독되어버린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

영화 속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조태오와 서도철을 ‘구경만’ 하고, 현실에선 약 1340만명이 구경만 하는 것으로 끝날지 모른다. 이쯤에서 류승완 감독에게 묻고 싶다. 서도철이 손수 피를 냈던 이마, 감독님의 이마는 괜찮으시냐고. 적어도 1340만이란 박스오피스는 내 눈엔 가시로 만든 관이기 때문이다.

지미 스트레인 인디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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