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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15 19:04 수정 : 2015.10.15 19:04

<한겨레> 10월9일치에 실린 ‘최재봉의 문학으로: 표절에 관한 이해와 오해’는 표절을 규명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거론하며 표절 의혹이 신중히 제기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글에서 그 근거로 든 것이 안정효의 <낭만파 남편의 편지>(1993)와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1997)이다. 두 작품은 크게 닮아 있어 출간 시기로 보아 밀란 쿤데라가 안정효를 표절했다고 의심을 품을 법하지만, 번역되지 않은 안정효 소설이 외국 작가에게 베껴졌을 가능성은 없으므로 표절 의혹을 잘못 제기하기 좋은 사례라는 것이다.

그러나 두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고 볼 수 없다. 거꾸로, 밀란 쿤데라 소설이 안정효 소설보다 세상에 먼저 나왔다면 안정효가 밀란 쿤데라를 표절했다는 시비에 휘말릴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 두 소설은 남편이 아내에게 발신인 없는 구애편지를 계속 보내는 장난을 치다 감당하지 못하는 결과를 빚는다는 얼개만 닮아 있을 뿐 나머지는 같은 것이 없다. 표절 시비는 큰 테두리가 아니라 작고 세밀한 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오래 사귄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장난편지 보내다 제 꾀에 제가 빠지는 것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한 이야기이며, 세세하고 구체적인 부분에서 닮지 않는 한 표절 시비는 무의미하다.

최재봉 기자는 “비슷하면 표절”이라는 논리가 신경숙 표절 사건의 여파를 타고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간에서 횡행한 것처럼 말하지만 수긍할 수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를 더 많이 접할 수 있다. 그의 글에서 “비슷하면 표절” 의혹을 받을 법한 사례로 김지하, 김남주, 윤동주의 시가 언급돼 있는데 김지하의 경우 맥을 잘못 짚었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폴 엘뤼아르의 ‘자유’를 ‘필사’한 뒤 뼈대는 그대로 두고 살을 다른 것으로 덮어쓰기 한 것이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쓴다’라는 표현의 반복에서 ‘자유’와 ‘구체적’으로 낱낱이 닮아 있다.

표절은 남의 작품을 자신의 것처럼 속이는 행위다. 최 기자가 ‘타는 목마름으로’가 ‘자유’를 표절한 것이 아니라 차용했거나 그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김지하가 그 시에 출처를 달았거나 발표 당시 엘뤼아르와의 연관성을 언급했어야 했다. 만약 ‘자유’가 낯선 외국시가 아니고 김지하 시에서 누구나 엘뤼아르를 떠올릴 수 있다면, 출처 표기가 없더라도 표절 시비는 비껴갔을 것이다. 그러나 ‘타는 목마름으로’는 오랫동안 김지하의 고유한 창작물이자 대표작으로 영예를 누려왔지 않은가. <맹자>의 구절이 담긴 윤동주의 ‘서시’를 표절이라고 할 수 없는 것도 천하가 다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김남주가 ‘조국은 하나다’를 쓸 때도 “쓰리라” 구절의 반복이 당대에 고전이 된 ‘타는 목마름으로’에서 발상을 가져왔다면 차용이나 모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표절 시비에 대해 “인용 출처를 밝히지 않은 작가의 단순 실수”라고 해명하는 것은 신경숙, 권지예, 황석영 등 표절 혐의를 부인할 수 없게 된 작가들이 단골로 입에 올린 변명이었다. 물론 자신의 행위가 표절이라는 명백한 인식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출처를 표기하지 않을 경우 남들이 자신의 온전한 저작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서 그동안 내가 쓴 글을 돌이켜보니 나 또한 남의 말을 할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내가 쓴 글에서도 남의 주장을 가져와 쓰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이 몇 건 있음을 알았다. 그걸 단순 실수라고 변명할 생각은 없다. 나는 당시 내 행위가 표절이라는 인식은 없었지만, 내가 가져온 남의 생각이 내 것이라고 남들에게 여겨졌으면 하는 욕망은 분명히 있었다. 창피하고 부끄럽다.

표절은 독자들이 잘 모를 것 같은 작품이 대상일 듯하지만 국내 유명 작품도 가리지 않으며 문학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인터넷 게시물, 만화 등 전방위적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표절 의혹을 신중히 제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마땅히 제기되어야 할 표절 시비를 가로막거나 표절 작가들을 빠져나가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정문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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