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한겨레>의 논평가라면 언론보도가 아닌 원문을 통해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수고를 해야 신문의 명성에 걸 맞는 논평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IMF 위기와 함께 맞은 김대중 대통령 임기 전반부에는 그야말로 대통령의 위상이 추상과 같았다. 언론의 정부 비판은 매서웠어도 김 대통령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었다. 대통령은 잘 하는데 아랫사람들이 일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에둘러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대통령의 리더십이 문제다”라는 칼럼을 통해 김 대통령을 정면 공격했다. 당시 독재 문화에 빠져있던 나는 제 깐에는 꽤나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그 후 보수언론으로부터 사랑받는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김대중 때리기’는 유행병처럼 번져 대통령 비판 못하면 바보가 될 참이었다. 언론과의 여러 가지 경험을 거치면서 결국 나는 유행병과 싸우는 전사가 되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논평가의 가장 큰 역할은 균형잡기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홍보수석 때리기가 유행이다. 자신의 인격은 상관없는지 언어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비판 받는 이유는 말 때문이다. 주로 일부 언론에 대고 미운 말만 해대니 자존심 높고 특권의식에 젖은 일부 언론인이 좋게 봐줄리 없다. 그 동안 강의나 인터뷰를 통해서 내보냈던 중심 메시지는 일관되게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였다. 우리가 홍보에서 실패하고 있는 이유가 뭔지,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부분이 뭔지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정부 탓, 내 탓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라는 20년간 연구결과와 신념에 근거해 있다. 아무리 언론이 비판하고 왜곡해도 우리가 잘 하면 국민들이 알아줄 것이라는 민초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선의 정책이 최선의 홍보”라는 말도 있다. 정책이 좋으면 홍보가 따로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앞뒤 맥락 무시하고 오해가 될만한 문장 하나만 달랑 떼 내 나머지는 쓰고 싶은 대로 쓴다. 그런 것조차 감안해서 말하지 못한 것도 사실상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다. 그러나 잘못은 잘못이고 일부 언론의 이런 태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본다. 지식인들이 입 다물고 있으니 정부인사들이 일부 언론에 대한 비판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일부 언론을 비판할 때마다 이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 있다. 왜 자기 반성 없이 ‘남의 탓’만 하냐며 역공을 취하는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낮은 지지도를 받는 정부는 비판할 자격도 없단 말인가. 비판이 완벽한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는가. 성적이 나쁜 학생도 교수평가를 할 권리는 있다. 일부 언론도 ‘남의 탓’이라는 교묘한 논리로 정부의 입에 재갈을 물릴 생각 말고 비판의 성역에 안주하는 특권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한겨레도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언론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한겨레는 이 같은 왜곡 보도와 정부 입막기에 편승한 적이 없다. 그래서 한겨레의 비판은 더 아프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최근 한겨레의 한 칼럼이 사실관계를 잘못 적시하고 있어 논평가의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도 한 때 언론보도가 모두 사실이라고 오해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 또한 많은 국민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한겨레의 논평가라면 언론보도가 아닌 원문을 통해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수고를 해야 신문의 명성에 걸 맞는 논평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그렇게 했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은 없다. 언제부터 언론에 대한 자의식을 갖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정치에 대한 나의 예측이나 비판이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는 순간 논평가로서 은퇴하겠다는 책임지는 자세로 임해왔다. 논평가에게 최소한의 사실관계 확인은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기숙/대통령 비서설 홍보수석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