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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11 19:07 수정 : 2015.03.11 19:07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정부가 2월17일 발표한 건강보험 재정 현황에 따르면 2014년 당기흑자가 4조6천억원, 누적흑자는 13조원에 이른다. 사후정산을 하지 않은 7조원 국고보조금 미납금까지 더하면 20조원에 달하는 재정이 남은 셈이다.

반면 정부가 2월3일 발표한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 계획을 보면 입원비를 올린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불필요한 장기입원 환자를 줄이기 위해 현행 본인부담금 20%를 15일 이상 입원 시 30%, 30일 이상엔 40%로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보장성 강화보다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옥죄는 행태에 시민사회단체와 국민들은 격분했고, 무상의료운동본부에서 시작된 ‘입원비 인상 반대 의견서’ 제출 운동에 일주일 만에 2만명 이상이 동참했다.

중기보장성 강화 계획 중 7개 과제는 4대 중증질환과 3대 비급여 계획으로, 선거공약 이행 차원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이 확정된 내용이 포함됐다. 새로 추가된 세부항목 이행에 드는 비용은 연간 3500억원으로 연간 0.9%포인트 보험료율에 해당한다. 현 재정흑자 규모에 견주면 조족지혈이다. 즉 정부는 건강보험 20조원 흑자와 보장성 강화 계획을 연결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그런데 건강보험 흑자의 원인을 살펴보면 더 이상하다. 직접적인 이유는 급여비 지출의 증가 속도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정부 설명은 의료기술의 발전, 환경요인 개선, 건강한 고령화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2년간 매년 4조원 이상의 유례없는 재정흑자를 설명하는 데 있어 참으로 근거가 빈곤하다. 정부 발표대로 노인진료비 증가율은 감소했다. 급격한 노령인구 증가와 노인빈곤 문제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다. 노인의료비 증가율 감소를 건강한 노년으로 해석하는 복지부의 시각을 과연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통계는 가계의 목적별 소비지출에서 보건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출 증가액은 줄었는데, 가계 보건의료비는 오히려 증가하는 것은 국민들의 소득은 줄어들고, 의료보장성은 턱없이 낮다는 증거다. 또한 경제적인 이유로 질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아파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이 건강보험 재정 흑자의 근본 원인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정부가 건강보험에 지원해야 하는 국고보조 미납금이 지난 7년간 7조원 이상이다. 서민증세에 몰입하는 정부가 과연 건강보험 재정 흑자와 국고보조 미납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뻔하다. 떼먹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2016년으로 예정된 기존의 정부지원금 비율을 낮추려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정부는 건보재정의 14% 정도를 지원한다.

정부는 2월26일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기존의 2개 부처 13억원 예산 규모에서 6개 부처 91억원 예산 사업으로 확대하고 건강보험 적용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원격의료는 의료기기업과 통신산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혹시 건강보험 재정이 이 사업체들이 국민의 건강을 상품으로 만드는 의료민영화의 마중물이 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최근 제네릭(복제약)에 일정 기간 독점판매권을 주는 우선판매품목 허가제가 도입되고, 허가-특허 연계제도의 도입도 예정돼 결국 약값 인상이 뒤따르게 되었다. 건강보험 흑자를 제약회사들도 나눠먹으려 한다.

따라서 건강보험 재정 흑자에도 불구하고 입원료 본인부담금을 인상하려는 정부 시도는 ‘마른 수건 쥐어짜기’일 뿐 아니라, 20조가 넘는 건강보험 흑자를 누군가를 위해 반드시 잘 챙겨두기 위함이다. 그 결과가 정부의 국고보조 미납금 떼먹기가 될지, 2016년으로 만료되는 건강보험 국고지원 축소가 될지, 의료기기업, 제약회사, 대형병원 등 탐욕스런 자본의 각축장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확실한 것은 서민들의 건강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김형성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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