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자동제세동기가 뭡니까? / 양영채 |
자동제세동기가 지하철에서 심장이 정지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승객을 구했다고 합니다. 역무원들이 두 손으로 가슴을 압박하는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의식을 차리지 못하던 순간 한 승객이 “자동제세동기(AED)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답니다.
역무원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제세동기가 귀한 목숨을 살렸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제세동기는 지하철 등 모든 공공시설에 의무적으로 비치돼 있습니다. 그만큼 심장 정지는 위험 상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자동제세동기를 생각해 봅니다. 기사에는 “자동제세동기(AED)를 가져오라”고 되어 있었지만 짐작컨대 “심장충격기를 가져오라”고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동제세동기는 보건소에 근무하는 사람 외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용도는 알아도 이름은 기억하기 어려운 자동제세동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짜증이 납니다.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도 없이 ‘심장충격기’라고 해도 사람들이 금방 알 수 있는 것을 정말이지 어렵게 적었습니다.
서울지하철역에 있는 자동제세동기는 전면에 크게 영문으로 AED(에이이디)라 적었습니다. 이게 뭔지 해독 못하면 죽기 딱 십상입니다.
자동제세동기를 따져봅니다. 영어로 AED(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 한자로 自動除細動器입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니 이해가 금방 됩니다. Defibrillator는 심장 박동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전기 충격을 가하는 데 쓰는 의료 장비라고 나옵니다. 제세동기는 한자를 좀 안다고 해도 참 쉽지 않네요.
우리 글을 갉아먹는 좀비바이러스를 찾았습니다. 인터넷을 몇차례 뒤진 끝에 찾은 실마리는 ‘제세동기’입니다. 키워드는 물론 세동(細動) 입니다. 정상적인 심장은 심방과 심실이 교대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지만, 짐작컨대 이상이 생긴 심장은 제대로 수축과 이완이 되지 않고 불규칙하게 떠는 모양입니다. 의학계에서는 이걸 세동이라 부르나 봅니다.
제세동은 ‘세동’을 없애준다는 뜻으로 붙였습니다. ‘제세동기’는 아마도 일본에서 도입된 이름을 아무 생각 없이 갖다 붙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학술적인 용어를 일본에서 빌려쓴 경우가 많습니다. 의학용어는 더 허다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어려운 용어를 고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진도는 미약하기만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세동기가 뭡니까? 고쳐야 합니다. 특히 그 말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용어라면 하루빨리 쉽게 이해하고 부를 수 있는 용어로 바꿔야 합니다.
양영채 ㈔우리글진흥원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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