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09 19:21
수정 : 2015.03.09 19:21
3월5일 새벽 민화협이 주최한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초청강연에 갔다. 조찬이 시작되자마자 괴한이 달려들어 대사에게 칼부림을 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나는 범인을 금방 알아보았다. 5년 전 초청강연을 하는 주한 일본대사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송상용, ‘시게이에 대사의 봉변을 보고’, <한겨레> 2010년 7월14일치 참조) 시게이에 대사는 몸을 피해 무사했지만 리퍼트 대사는 중상을 입어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민화협(민족화해협력국민협의회)은 보수와 진보가 함께하는 통일 지향 민간단체로서 1998년 출범했고 북한에도 약자가 같은 비슷한 기구가 있다. 민화협은 역대 주한 미국대사들을 초청해 통일과 관련된 강연을 마련해 왔는데 나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와 성 김 대사에 이어 한국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보여 온 신임 마크 리퍼트 대사의 강연에 기대를 걸고 갔던 것이다. 오랜 남북 대치와 심각한 이념 갈등에도 불구하고 거의 폭력이 없었던 한국에서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 것은 크게 걱정해야 할 일이다.
사건 직후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종북 세력이 한-미 동맹에 타격을 가한 것으로 단정했는데 이것은 위험한 속단이다. 엄정한 조사로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미국 쪽에서 보는 것처럼 개인의 일탈일 가능성이 높다. 이슬람국가의 폭력을 비난했던 북한이 김기종을 찬양하는 망발을 거듭하는 것도 딱하다. 민화협은 보수와 진보가 대화하고 협력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단체다. 남북 대화가 꽉 막혀 있는 이때 민화협은 중요한 몫을 할 수 있다. 불행한 사건 때문에 위축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리퍼트 대사의 강연을 들었다면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으로 남북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게 되었다. 남한은 북방정책을 추진해 소련, 중국과 수교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도 미국, 일본과 외교관계가 없다.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실현되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좌절되었다. 오바마 정부에 들어와서도 대북한 정책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이 쿠바, 이란에 뒤이어 북한과 수교 협상을 시작한다면 핵개발 포기로 갈 수 있지 않을까?”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빈다. 대사가 준비했던 원고를 읽고 만나서 통일 문제에 관해 토론하고 싶다.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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