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6 17:52
수정 : 2005.09.26 17:52
왜냐면
DDA 협상 방식으로 관세화할 경우 향후 10년간 약 800만석의 의무 수입량을 줄일 수 있다. 2015년 관세화의 경우보다 더 높은 관세를 수입쌀에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에스에이 라이스 페더레이션’이라는 모임이 있다. 미국 쌀 농장주와 정미업자들의 조직이다. 이곳의 임원인 루에와 프락터가 인터넷 뉴스에서 했던 말에, 왜 내가 불편한 걸까? “우리는 한국과의 쌀 협상에서 전 과정에 관여했다.” “앞으로도 당국자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이번 협상에서 얻은 이익을 손에 쥘 것이다.”
여름에 쌀 협상 청문회가 있었다. 난 그때서야 미국 쌀이 1995년부터 6년이 지나도록 단 한 톨도 자유경쟁 입찰에서 낙찰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정부가 입찰규격을 바꾸어 준 뒤에야 24% 가량의 점유율을 차지하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것을 실적으로 삼아, 미국이 이번 쌀 협상에서 자기네 쌀이 자동 수입되도록 나라별 쿼터 수입제를 관철시킨 것도 알게 되었다.
주류 언론은 쌀 협상 비준 동의안을 빨리 처리하라고 국회를 재촉하고 있다. 그런데 국제법상 비준이란 무엇인가? 국가 원수가 국가를 대표하여 조약의 구속력을 최종적으로 인정하는 법률행위이다. 비준은 대한민국에 법률적 구속력을 부여한다. 그러기에 우리 헌법은 중요 조약은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만 비준을 하도록 했다. 쌀 협상이 작년 9월까지 타결되지 않으면 자동 ‘관세화’(수입 자유화)된다고 보도하던 바로 그 신문들이 2005년 9월의 국회가 동의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관세화된다며 닦달한다. 관세화와 유예의 실익을 냉정히 따지자던 신문들이 국별 합의문 문항이 아예 비밀로 분류되어 국회의원조차 볼 수 없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독촉한다.
지금이 표결을 할 때인가? 정부 발표만 보더라도 쌀 협상은 비준되어서는 안 된다. 비준할 바에야 관세화가 더 나을 것이다. 비준은 2015년 관세화를 향한 시계의 태엽을 감는 것인데, 이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다. 2015년 관세화는 그 때의 소비 예측량 대비 12% 가량의 쌀 이상을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만 하는 조건으로 설계되어 있다. 우리가 2015년에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올해부터 2015년까지는 괜찮은가? 올해부터 외국쌀을 시판해야만 한다. 앞으로 10년간 약 2300만석의 외국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만 한다. 지난 10년간의 의무적 수입량은 약 800만석이었다. 수입쌀이 정부 양곡 창고에서 묵히지 않도록 매해 방출해 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세계 수출 1위인 중국 사과의 수입 검역을 신속하게 진행해 주어야만 한다. 이러한 비준동의안이 우리 농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정부조차 객관적으로 평가한 바 없다.
이번 쌀 협상은 안전판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비준을 할 때가 아니라, 다른 대안을 찾는 데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현재 새로운 세계무역기구 협상(DDA)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농업분야의 개발도상국의 경우 쌀 의무 수입량을 더 늘리지 않아도 되는 짜임새로 가고 있다고 한다. 이 방식을 따라 관세화를 할 경우 향후 10년간 약 800만석의 의무 수입량을 줄일 수 있다. 2015년 관세화의 경우보다 더 높은 관세를 수입쌀에 매길 수 있어 충격이 적을 것이다. 지금 비준을 해 준 후에 나중에 대안을 찾으려면 비용을 더 치러야 할 것이다. 중국에게 약속한 신속한 사과 수입 검역을 지켜 주어야만 한다. 일단 비준을 해 주면 상대방에게는 기득권이 된다. 앞의 루에와 프락터가 이 기득권이 대가없이 줄어드는 협상을 보고만 있겠는가?
송기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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