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포는 단지 정치사회적인 측면에서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이 아이는 다섯살인데 영어를 이렇게 잘합니다. 댁의 아이는 어떻습니까?”라는 말에 행여 우리 아이가 뒤처질세라 주부들은 어린아이들을 학원에 내던진다. “얼굴 못생기면 이제 애인도 안 생긴다”라는 협박에 사람들은 지체 없이 수술대에 드러눕는다. 공포란 정말 손쉽고 유용한 도구다. 단언하건대 이제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성을 되찾고 극히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정말 다섯살 때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늦는 것인가?’ ‘정말 우리나라가 그 법 하나 없으면 무너지는 그런 나라인가?’ 한번 냉철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임종금/창원대학교 4학년
왜냐면 |
우리 주변 공포들의 실체 |
최근 몇몇 이들은 공포로 휩싸여 있다. ‘나라가 사회주의로 흘러가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없애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한다!’, ‘노조가 파업을 해서 경제를 망친다!’ 공포 속에서 이득을 얻는 자가 있기에 이런 실체 없는 공포들이 나도는 것이다.
최근 대한민국의 몇몇 이들은 공포로 휩싸여 있다. ‘나라가 사회주의로 흘러가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없애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한다!’, ‘노조가 파업을 해서 경제를 망친다!’, ‘우리의 어버이나 마찬가지인 미국이 떨어져나가려 하고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공포에 휩싸여 있으며 사람들에게 공포를 조장하려 애쓴다.
그러나 한번 냉정하게 살펴보자. 우리는 지난해 사상 최대의 무역액과 수백억달러의 무역 흑자를 보았다. 주식시장의 거래량은 줄어들지 않았으며 주가는 오르고 있다. 국민소득도 올랐으며, 계속적으로 규제를 풀고 외국인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애쓴다. 국영기업들은 끊임없이 사기업화되고 있다. 도대체 이만큼 자본주의적인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어디에서 사회주의의 경향을 읽을 수 있는가?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그 말마따나 대한민국이 보안법 하나 없어졌다고 망하는 나라라면 정말로 큰일이다. 보안법이 없어져 그들의 말대로 서울 시청 앞에서 ‘장군님 만세! 수령님 만세!’를 외쳐도 누구 들어주겠는가? 이미 전 국민은 어느 쪽이 더 살 만한 쪽인지 명백하게 알고 있다.
노조가 파업한다고 경제가 망한다? 부실 경영으로 무너진 기업들은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막상 노조가 파업해서 무너진 기업의 예를 들라고 하면 과연 누가 몇이나 댈 수 있을까? 미국이 우리를 버린다고? 한국은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미국의 무기 구매국이다. 무기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고, 파병해 달라는 대로 다 해준다. 오죽하면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가 “지금 한-미 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했겠는가?
이렇듯 실체 없는 공포들이 대형 언론의 정치·사회면을 뒤덮고 있다. 그들만 그러는가? 얼마 전 교회에 가니 또 공포가 만연하고 있었다. “인류 역사는 이제 23시간 59분 57초가 흘렀다. 이제 3초만 있으면 인류 역사가 끝난다. 곧 주님이 강림하셔서 인류를 심판할 것이다. 빨리 회개하고 주님의 곁으로 오라.”
왜 이런 실체 없는 공포들이 나돌까?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만 그 공포 속에서 이득을 얻는 자가 있기에 이런 실체 없는 공포들이 나도는 것이다. 외교와 안보에 대한 공포를 통해서 반대편에 있는 정치세력을 공격하고, 자신의 명분을 지킬 수 있다. 사회주의와 좌파에 대한 공포를 통해서 그들은 사람들을 자기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노조에 대한 공포를 부추겨야 자본가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죽음과 종말에 대한 공포를 부추겨야 신도 수를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공포를 조장하면서 힘과 부를 쌓아간다.
이런 공포는 단지 정치사회적인 측면에서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이 아이는 다섯살인데 영어를 이렇게 잘합니다. 댁의 아이는 어떻습니까?”라는 말에 행여 우리 아이가 뒤처질세라 주부들은 어린아이들을 학원에 내던진다. “얼굴 못생기면 이제 애인도 안 생긴다”라는 협박에 사람들은 지체 없이 수술대에 드러눕는다. 공포란 정말 손쉽고 유용한 도구다. 단언하건대 이제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성을 되찾고 극히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정말 다섯살 때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늦는 것인가?’ ‘정말 우리나라가 그 법 하나 없으면 무너지는 그런 나라인가?’ 한번 냉철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임종금/창원대학교 4학년
이런 공포는 단지 정치사회적인 측면에서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이 아이는 다섯살인데 영어를 이렇게 잘합니다. 댁의 아이는 어떻습니까?”라는 말에 행여 우리 아이가 뒤처질세라 주부들은 어린아이들을 학원에 내던진다. “얼굴 못생기면 이제 애인도 안 생긴다”라는 협박에 사람들은 지체 없이 수술대에 드러눕는다. 공포란 정말 손쉽고 유용한 도구다. 단언하건대 이제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성을 되찾고 극히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정말 다섯살 때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늦는 것인가?’ ‘정말 우리나라가 그 법 하나 없으면 무너지는 그런 나라인가?’ 한번 냉철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임종금/창원대학교 4학년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