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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6 16:20 수정 : 2005.01.26 16:20

방사성 폐기물 관리처분 사업은, 정부가 독립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원자력위원회는 불투명한 막후 조정으로 이미 결정된 내용을 형식적으로 통과시키고 있다. 또 예산이 원전 사후처리 충당금으로 운영되면서 적립금이 원전 건설에 전용되는 등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말 원자력위원회의 결정사항을 근거로 또다시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선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원자력위원회의 결정이 시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중저준위 방폐물과 사용후 핵연료를 분리한 것인데, 시민단체가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주장해온 내용은 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고려 없이 무턱대고 “터부터 찾고 보자”는 식의 기존 관행을 중단하고 많은 시간과 예산이 드는 사용후 핵연료의 관리·처분 정책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되 부차적인 중저준위 방폐물 문제는 그 결과에 따라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이 때 정부가 유념해야 할 것은 사용후 핵연료 처분 등 방폐물 정책의 성패는 충분한 연구개발과 함께 이해 당사자 간 굳건한 신뢰관계에 달렸다는 점이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 터 추진이 이번 원자력위원회에서 제외되었다지만, 사용후 핵연료의 처분 정책은 터를 잡기 이전에 수십년에 걸친 지하 실증시험 등 관련 연구에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다. 터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뒤로 미룰 것이 아니라 당장부터 챙겨야 한다. 또한 “중저준위 방폐물은 중요도가 떨어지니까 정부 의지대로 폐기장 추진을 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편의주의적 태도는 결국 또다른 불신과 갈등을 일으켜 방폐물 정책 전체를 그르치게 될 것이다.

방폐물 관리처분 사업은 국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로서, 원자력 산업계의 이해 관계나 관계 부처의 정책 목표에 의해 왜곡되지 않도록 정부가 별도의 제도와 조직을 통해 사업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원자력위원회의 의사결정 과정은 원자력 산업계와 특정 부처의 불투명한 막후 조정으로 이미 결정된 내용을 관련성 없는 경제 장관들과 민간위원들의 권위를 빌려 형식적으로 통과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방폐물 정책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관련 예산이 한수원의 원전 사후처리 충당금으로 운영되면서 연구개발에 들어가야 할 적립금이 신규 원전 건설에 전용되는 등 심각한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사용후 핵연료 처분 연구개발은 원자력연구소와 같은 기관이 추진하도록 제도화되어 있고, 매년 원자력 연구개발금이 이 연구소로 지급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기금은 그 성격상 대부분 신형 원자로 개발 등 일반 연구 사업용으로 원전 사후처리와 무관한 곳에 사용되고 있다. 정작 원자력연구소의 원전 사후처리 연구개발은 예산 부족으로 지난 10년 동안 문서업무 수준에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한수원 산하 원자력환경기술원이 추진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는 중저준위 방폐물의 처분 문제는 불요불급함에도 과도하게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불과 수백평 규모의 저장고만 추가하면 해결될 중저준위 방폐물 문제를 침소봉대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유리화’까지 하겠다는 한수원의 계획은 원자력학계에서조차 도덕적 해이로 비판받고 있다. 저장고 규모의 100배가 넘는 신규원전 사업은 지역 여론을 무시하고 추진하면서도 원전 터 내 저장고 증설과 같은 해결책이 지역 주민의 반대 때문에 불가하다는 한수원의 주장도 옹색할 뿐이다.

정부가 챙겨야 할 진정 시급한 문제는 안정적인 사용후 핵연료 관리·처분 연구개발의 보장과 이를 위한 원전 사후처리 예산관리 제도의 재정비다. 현재 원전 사후처리 충당금 제도에서는 원전 사업자가 원전 사후처리 예산을 관리하면서 경영 목적을 위해 예산을 적게 적립하거나 원전 건설에 전용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를 기금화하여 나라의 원전 사후처리 기구가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불요불급한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장 선정으로 또다시 소모적인 사회 갈등을 조장하지 말고 투명하고 독립적인 방폐물 사업체제를 구축하여 안정적인 연구개발과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부터 회복해야 할 것이다.

석광훈/녹색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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