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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9 17:15 수정 : 2005.09.19 17:15

왜냐면

국민을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의 주체로 보는 주민투표라면 적어도 방폐장 예정 터 인접지역의 주민들은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건으로 하고, 이웃 시·군 주민들에게도 투표권을 인정하는 것이 순리다.

경주, 군산, 포항, 영덕에서 방폐장 부지선정 문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보면 볼수록 가슴이 답답하다.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주민투표 방식이 최선인가? 갈등은 다양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같은 시·군 안에서 방폐장 입지 예정지역 주민과 그 밖의 지역 주민 간의 갈등이 그 첫번째다. 경주시는 양북·양남·감포 지역과 그 밖의 지역, 포항시는 죽장·청하·송라·기북 지역과 그 밖의 지역, 군산시는 나운·소룡·대야·성산 지역과 그 밖의 지역, 영덕군은 모든 읍면에서 주민들이 찬성·반대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 두번째는 방폐장 유치 시·군과 이웃 시·군 간의 갈등이다. 군산시는 서천군과, 경주시는 울산시와, 포항시는 청송군과 방폐장의 안전성, 경제적 지원의 형평성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정부에서 지역갈등의 핵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상황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은 주민투표 방식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지만, 정부는 주민투표야말로 민주주의 제도에 충실한 사회적 합의절차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주민투표법 24조를 보면 투표결과는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 2분의 1 이상의 득표로 확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전체 유권자의 17%만 찬성해도 방폐장 부지로 선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19년 동안 끌어온 방폐장 갈등이 17%의 찬성으로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로 유지되는데 17%의 찬성은 다수결이 아니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전체 국회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과 유권자의 과반수 투표,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다. 경주시 양북·양남·감포, 포항시 죽장·청하·송라·기북, 군산시 나운·소룡·대야·성산, 영덕 주민들을 비롯해서 방폐장 예정 터와 인접한 울산시, 청송군, 서천군 주민들에게 방폐장 문제는 헌법 개정 못지 않은 중요한 문제다. 이것을 17%의 찬성으로 결정하고, 행정구역이 다르다고 투표권도 주지 않는 것이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을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의 주체로 보는 주민투표라면 적어도 방폐장 예정 부지 인접지역의 주민들은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건으로 하고, 이웃 시·군 주민들에게도 투표권을 인정하는 것이 순리다. 이렇게 해야 반대의견을 설득할 수 있는 절차의 정당성이 확보되고, 반대하던 주민과 환경단체들도 투표결과에 승복할 명분이 생긴다.

정부도 이 점을 우려해서 4개 시·군의 유치경쟁을 통해 투표율과 찬성률을 높이려 하고, 해당 지자체들은 공무원을 동원하거나, 읍·면·동 단위로 유치위원회를 구성하고, 유치를 희망하는 녹색 깃발을 시내 전역에 내거는 등의 홍보활동에 열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19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아직도 반복하고 있다. 홍보의 주체가 방폐장 사업자와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바뀌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설득과 홍보의 대상이다.

사업자와 중앙정부 대 주민과 환경단체의 갈등구조가 중앙정부와 지자체 대 주민과 환경단체로 바뀌었지만 갈등 해결방식에서 대화와 타협은 여전히 배제돼 있다. 공공기관이 당사자인 사회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기 위해 중립적인 제3자에 의한 갈등 영향분석 제도를 도입하고, 이해관계자와 시민들이 대화의 주체가 되는 참여적 의사결정 방법을 활용하는 내용의 갈등관리법안을 국회에 발의한 정부가 방폐장 갈등은 이 방식의 예외로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방폐장 갈등의 핵심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다. 과학기술적 안전성, 위험부담의 형평성, 추진절차의 공정성 등 방폐장 문제의 주요 쟁점들에 대한 정부의 주장과 약속을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불신하기 때문에 갈등이 지속되는 것이다. 정부는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방폐장 특별법에서 사용 후 핵연료 등의 고준위 폐기물을 분리하고, 터 선정은 주민투표로 결정하며, 3천억원의 특별지원금과 각종 지역개발 지원에 관한 약속들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특별법을 제정함으로써 안전성과 형평성에 대한 불신은 어느 정도 완화됐다고 해도 절차의 공정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17%의 찬성으로 결정하는 주민투표 방식은 민주주의 원리의 다수결도 아니고 사회적 합의절차로 보기도 어렵다. 반대하는 주민과 환경단체들에 투표결과에 불복하는 명분만 줄 수 있다. 방폐장 터 인접 주민들의 한 표와 도심 주민들의 한 표를 동일하게 취급하고, 방사능 오염의 영향권에 있는 이웃 시·군 주민들의 권리를 무시하면서, 행정편의적인 주민투표 방식으로 터 선정을 강행하게 되면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 깊어지고 오히려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신창현/환경분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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