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19 17:07
수정 : 2005.09.19 17:13
왜냐면
일반인보다 수명이 짧은 장애인들로부터 보험료만 수십년 동안 거둬들인 뒤에 혜택에서 제외시키겠다는 것이 노인수발 보장제도다.
2008년 하반기부터 시행될 노인수발보장법안(이하 법안)이 발표되었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광고에 출연하여 “치매·중풍노인, 아무도 돌볼 수 없다면 대한민국이 돌봐야 합니다”라고 제도를 홍보하고 있다. 김 장관의 말은 바로 노인수발 보장제도는 보편적 요양서비스가 아니라 노인성 질환자 중에서 와병 상태의 대소변도 못 가리는 중증 환자만을 대상으로 시설요양 위주로 시행하되, 재가 서비스는 6가지로 축소하고, 민간재원 위주로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반응을 봐가면서 슬금슬금 보험료를 올려 재원이 확보되면 서비스 대상, 수준 및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정부의 의도가 이러하다 보니 제도의 명칭 또한 애초의 장기요양 서비스가 필요한 국민 전체를 그 대상으로 하는 국민요양 보장 혹은 장기요양 보장제도에서 노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요양 보장제도로 바뀌었다가, 다시 요양비와 치료비를 제외한 수발만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수발 보장제도로 바뀌었다. 이는 호랑이를 그리려다가 고양이를 그린 뒤에, 다시 쥐를 그려 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보다도 수발 서비스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장애인들인데도 법안에는 장애인이 배제되어 있다. 장애인의 수명은 일반인보다 짧아서 60% 정도가 65살까지 살아남지 못하는 실정인데, 장애인들로부터 보험료만 수십년 동안 거둬들인 뒤에 혜택에서 제외시키겠다는 것이 노인수발 보장제도다. 장애인들이 항의하자 복지부는 “장애인은 국가재정에 의거하여 노인요양 보장제도의 급여 수준으로 간병·수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바 있다”고 해명했으나 어떤 장애인 복지 제도로도 수발 서비스가 보장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 부담으로 수발 서비스를 제공할 의사가 있다면 왜 국가 예산이 적게 드는 사회보험을 놔둔 채 굳이 예산이 많이 드는 다른 제도로 간병·수발 서비스를 제공하겠는가? 정부는 장애인을 우롱하는 거짓말을 둘러대지 말고 장애인을 수발보장 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현재 191만명이 돈이 없어서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들이 노인수발 보험료를 낼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빈곤선의 180% 이하의 저소득층은 보험료 부담 없이 의료·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보험료 체납으로 인하여 수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양산되지 않도록 최저생계비의 150%선 이하 저소득층의 수발 보험료는 정부가 대납해야 한다.
일본의 수발보험은 민간 영리기업의 수발 서비스 공급 촉진을 위하여 고급 시설을 이용할 때에도 특례요양비가 지급되도록 설계됐는데,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기업이 시설을 운영하다가 문을 닫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는 공급이 불안정해지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음에도 실제로 수발이 필요한 장애인들은 제외한 채 삼성 노블카운티와 같은 고급 유료 수발시설 이용자들은 특례수발비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였다. 수발보험은 고급 유료시설 이용자와 같은 부자 노인들보다는 장기간 수발 부담을 져야만 하나 시장 서비스를 제공받을 돈이 없는 중증 장애인과 같은 사람들을 위한 사회보험이다. 그럼에도 장애인들은 배제한 채 실패한 일본식 특례요양 제도부터 먼저 도입하는 것은 사회보험의 근본 취지를 망각한 처사다.
수발보장제도는 보험료+정부 부담+본인 부담의 혼합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그동안 일관되게 ‘재정의 30~40%를 정부가 부담하겠다’고 공언해 왔음에도 법안에는 정부 부담이 20.1%로 크게 감소되었다. 정부 부담이 30~40%는 되어야 장애인 배제를 막고, 민간 영리기업을 끌어들여 제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 방지될 수 있다. 직장 가입자의 수발보험료는 월평균 1452원으로 책정되었다. 이왕에 제5 사회보험을 도입할 바에야 국민을 설득하여 보험료를 좀더 거두더라도 제도를 제대로 시행해야 할 것이다.
류정순/한국빈곤문제연구소 전국빈민상담네트워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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