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9 18:11
수정 : 2005.09.09 18:16
왜냐면
대학교는 인재를 교육하는 기관이며 돈을 적절하게 쓰는 곳이지 돈을 벌어들이는 곳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잊고 있다.
요즘 각 대학교 교수들이 여러모로 혼쭐이 난다. 세계에서 100번째도 못 드는 대학교라느니, 연구비 받아서 제자들에게 갈 것을 챙겼느니, 교수를 뽑는 인사 과정에서 부정을 저질러 대학교의 위상과 권위를 떨어뜨렸다느니, 한국 대학교는 그 자체로 학문을 완성할 수가 없으니 ‘선진국’(?)으로 일찌감치 유학을 보내야 살 길이 열린다느니 가히 추악한 말과 관념들이 쏟아진다.
우선 ‘선진국’이라는 말부터 뜯어보자. 어느 나라가 선진국인가? 자원을 무진장 헤프게 쓰면서 전 세계의 각종 자원을 속속들이 고갈시키는 데 앞장서는 나라가 선진국인가? 엄청난 살상무기를 만들어 세계 전 국가들에게 싸움을 붙여 장사를 잘 하는 장사꾼이 득세하는 나라가 선진국인가? 과학이라는 말로 지구의 모든 생존자들을 눈멀게 하면서 각종 질병과 전쟁, 경쟁을 부추기는 나라가 선진국인가? 이 말은 결코 써서는 안 될 말이다. 세계에 그런 1등, 2등, 3등에 속하는 나라란 없다. 100개 대학에도 못 드는 나라, 그 100개 대학이란 모두 미국과 그에 속한 나라에 있는 대학 아닌가?
왜 우리는 미국이나 서유럽인의 눈으로 세계와 나를 읽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누가 고민이나 하고 있는지, 나는 생각한다. 그런 미국식 사유법으로 세계를 읽고 학문을 대하며 앎의 문제에 접근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금 우리나라 대학교는 병들어 가고 있다.
한국의 각 대학교 교수들은 연구비를 얼마나 받아왔는가 하는 것이 그 능력을 재는 척도로 자리 잡기 시작한 지도 오래되었다. 대학교는 교육하는 기관이며 돈을 적절하게 쓰는 곳이지 돈을 벌어들이는 곳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잊고 있다. 앞날에 닥쳐올 재앙 극복이나 행복을 찾아 나서는 일을 할 인재들을 가르치기 위해 돈을 들여 쓰는 곳이 대학교다. 그들에게 돈을 벌어들이라고 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에서 연구비 책정과 그것을 감독하기 위해 각종 기관이 대학교에 가하는 감시 방식은 가히 범죄적이며 조직적이다. 철학책 한 권이나 시집 한 권을 쓰기 위해, 역사서나 문학이론을 내기 위해 연구비를 받았을 때, 연구비를 준 기관에 제출해야 하는 각종 계획서, 중간보고서 작성, 경비에 든 영수증 처리 문제들은 그야말로 학문이나 창작을 위한 머리 쓰기에 저절로 지쳐 떨어질 노력을 기울이도록 되어 있다.
7년여의 긴 해직교수 상태에서 풀려난 내가 대학교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존경하던 한 교수께서 ‘정 형! 당신 제발 연구비를 받지 말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이제야 확연하게 알게 되었다. 돈이 되는 학문을 위해 학문을 하라고 돈을 들이는 기업 공화국 교육정책에서 이젠 좀 눈을 달리 떠야 하는 때가 오지 않았는가? 도도하게 가난과 씨름하는 학자들을 위해 연구비 문제로 괴롭히는 정책에 머리를 싸매는 과학정책에서 눈을 제발 돌려주기를 바란다.
정현기/문학평론가, 연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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