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제는 옳고 그름의 단순화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 문제들을 피하거나 다수의 힘에 맡겨두지 않고 정면으로 대결해야 할 시기다. 노 대통령이 자신과 대결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만난다. 어떤 문제든 말을 꺼낸 사람과 응답해야 할 사람이 만나서 상의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만나서 입씨름만 하거나 서로 다른 점을 확인하는 데 그치더라도 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기탄없는 대화’가 궁금하고 기대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이 마냥 후련하게 느껴지는 것만은 아니다. 아마 그 만남의 자리에 ‘국민’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 그래서 그 만남을 있게 한 것도, 또 그 만남으로 얻어질 이득도 국민과는 상관없을 것이라는 답답함 때문일 것이다. 국민은 이번에도 뒷전에서 이리저리 끌려가야 할 황망한 상황을 맞게 될지 모른다. 이런 일은 이번만이 아니다. 멀게는 십수년 전의 ‘3당 합당’이 그랬다. 참여정부 전반기에도 국민들은 한번도 제대로 나라 일에 끼어들지 못했다. 대통령보다 항상 한 발 늦고, 또 들어주지 않기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줄여야 했다. 물론, 정치 권력과 관련된 얘기들은 흥미로운 화제일 수 있다. 그러나 흥미는 흥미일 뿐이다. 국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흥미가 즐거운 구경거리가 되지 않으면 순식간에 분노와 무관심으로 변한다. 즐거우려면 구경하는 자리가 편하고, 자신의 기대와 열망이 공명되고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지금 서 있는 ‘자리’는 난해하기만한 경기침체와 공교육 파탄, 빈부격차의 심화 등 산적한 문제들 사이에 있다. 정치인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단히 독특한 방식을 갖고 있다. 이 방식은 아마도 노 대통령을 있게 한 최대의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무현 방식’은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옳고 그름으로 단순화해 대립각 속에서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정면 대결의 방식이다. 옳고 그름에서 우회하지 않고 바로 대결하는 그의 방식이 문제의 종류나 성격과 관계없이, 또한 그것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신선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방식으로 노 대통령은 지난 2년반 동안 인적 청산도 하고, 법제도 만들고, 외쳐보기도 했다. 정면 대결의 방식은 그동안 여러 영역에서 유효했다. 권위주의적 관료제의 비민주성,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정부패 문제, 비민주적 정치관행 문제 등에서 민주 대 비민주, 투명 대 부패라는 대립의 형태로 단순화해 정면 돌파가 시도됐다. 물론 이런 영역에서 민주주의와 정의, 그리고 우리 국민들의 희망과 행복을 위한 노력이 결코 사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2년반을 돌이켜보면, 노 대통령의 방식대로 문제를 단순화시켜 정면 대결로 해결하기에 적합한 문제들만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면으로 돌파하기에는 쉽게 단순화되지 않는 문제들이 더 시끄럽게, 그리고 더 많이 계속되었다. 환경 문제를 비롯해 끊임없이 변모하는 재벌, 노사 문제, 점점 더 심해지는 빈부 격차와 경제 문제, 엄청난 난국에 빠져 있는 교육 문제, 그리고 우리의 현대사의 나이만큼이나 뒤틀려 있는 과거청산 문제 등이 그런 사례에 해당될 것이다. 이제는 옳고 그름의 단순화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 문제들을 피하거나 다수의 힘에 맡겨두지 않고 정면으로 대결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연정론이나 재신임론 등을 대통령 자신이 던져 놓고 국민들과 맞설 것이 아니라, 노 대통령이 자신과 대결해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민주화의 과정이 권력과 재화를 더 균등하게 돌려주려는 노력이었다면, 이제는 민주화의 결과를 모든 이들에게 돌려주는 민주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주민, 노동자, 기업주, 공무원, 국회, 언론 두루 민주화의 멋진 덕을 누리고 나누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더는 ‘민주화’라는 말과 함께했던 ‘으쓱거림’과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이상영/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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