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민주를 위해 죽임을 당한 가족이 있는가 하면 민주민족운동 선상에서 고문당하고 징역 살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온갖 고초를 다 겪었으면서도 아직 침묵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노 대통령은 이들의 처지에 잠시만이라도 서보길 바란다. 과거의 자기 투쟁이, 자기가 겪은 고초가, 또 자식들의 죽음이 이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군사독재와 싸운 일이 부질없는 짓이었단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과 연정을 제의하면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노선에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하더니 최근에는 정권이양도 검토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원류인 군사독재 정권을 권좌에서 쫓아내기 위해 피흘리며 싸운 과거 때문에 우리는 자다가 일어나도 한나라당을 규탄의 대상, 청산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과 함께 규탄의 대상이란 말인가? 어지러운 정치현실을 돌파하기 위한 고뇌에 찬 말씀으로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한나라당이 어떤 당인가?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에 이어 박정희의 파쇼적 유신 독재, 그 뒤를 이은 전두환의 살인 민정당, 노태우의 삼당 야합에서 탄생한 민자당, 신한국당, 그리고 김영삼을 이어 오늘에 이른 한나라당이 아닌가. 이해찬 국무총리는 연초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후퇴한다”고 지적했다. 120여석의 국회의원이 있으니 정치세력으로는 인정해 질의에 답변은 하지만, 한나라당은 역사적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정당, 즉 공당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한나라당을 이해하는 데 가장 적절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정당과 연정을 하자면서 지역구도를 해결할 수 있는 선거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도끼 든 이가 바늘 든 도적을 못 당한다’는 속담도 있거니와 노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뒷받침하려고 불과 40여석의 여당을 반수가 넘는 다수당으로 만들어 주었을 때는 무얼 하다가 이제 와서 한나라당과 힘을 합한단 말인가? 민주와 자주 그리고 통일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던 사람들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또 아낌없이 한표를 던졌던 민주를 갈망하는 국민들에게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지역구도 타파란 것도 그렇다.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 땅의 지역구도는 선거제도의 변경으로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바로 약소국가의 예속현상(식민지 현상)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디바이드 앤드 룰’, 통칭 ‘분할해서 지배한다’는 이 명제를 제대로 읽지 않고는 고질적인 지역구도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디바이드 앤드 룰’에 대응해 나가는 방략 속에서 지역구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지, 그러지 않고는 그 어떤 고담준론도 모두 허구다. 민족 자주를 향한, 통일을 위한 연정이 있고 그 연정을 바탕으로 동서남북 모든 겨레가 힘을 합해 민족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지역주의가 초봄의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역사 전진의 체제화 과정을 성공적으로 한번 거쳤을 때 비로소 지역구도가 말끔히 정리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동과 서가 힘을 합쳐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는 싸움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즉 봉건적 지역 할거성을 민주·민족혁명 방향으로 극복했을 때만이 지역구도가 사라지는 것이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노 대통령은 단순히 선거법 개정으로 지역구도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주어진 권력을 포기해서라도 지역구도를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는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뿐 정답은 아니다. 잔꾀로 정치를 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정치절학의 빈곤마저 느껴진다. 민주를 위해 죽임을 당한 가족이 있는가 하면 민주민족운동 선상에서 고문당하고 징역 살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온갖 고초를 다 겪었으면서도 아직 침묵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노 대통령은 이들의 처지에 잠시만이라도 서 보길 바란다. 과거의 자기 투쟁이, 자기가 겪은 고초가, 또 자식들의 죽음이 이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군사독재와 싸운 일이 부질없는 짓이었단 말인가? 살육을 자행한 전두환의 만행에 항거한 5월의 넋들에게도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과 노선이 거의 같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배다지/자주평화통일 민족회의 상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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