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최근 기륭전자는 노동부로부터 불법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사용자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60명이 넘는 노동자를 대량해고했다. 노동법은 사라지고 민법만 남는 것이다. “노동부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돌아온 것은 해고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노동부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노동자들의 한결같은 한탄소리다. 비정규직 노동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파견제 비정규직이다. 원청회사는 아무런 책임 없이 일방적으로 권리만 행사하고 노동자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도, 인간의 최저기준을 지켜주는 근로기준법상 그 어떤 것도 보장받지 못한다. 이런 최악의 불평등한 관계를 용인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 지금은 ‘디지털 산업단지’로 바뀐 구로공단에 기륭전자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의 고용형태를 보면 기가 막힌다. 산업자원부에 등록된 기륭전자의 직원 수는 200명이 조금 넘는다. 그런데 실제로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500여명이다. 이 중 생산직은 300여명, 그리고 이 300명 중 정규직은 단 10명이고 40명이 직접고용된 계약직이고 250여명이 파견직 노동자다. 생산직에서 96% 이상이 비정규직인데 그중 불법파견이 무려 83%다. 대부분의 생산을 불법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기륭전자는 노동부로부터 불법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사용자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60명이 넘는 노동자를 대량해고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생존권이 파괴된 이들은 부당해고가 아니라 계약해지의 대상일 뿐이다. 노동법은 사라지고 민법만 남는 것이다. 요컨대, 오늘 한국 비정규직의 노동 현실은 노동법이 성립하기 이전의 야만의 시대로 후퇴한 것이다. 이런 참혹한 역사적 퇴행에 맞서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기륭전자 노동자는 노동부를 방문하여 계약해지 중지와 노사 성실교섭 촉구 공문을 보내게 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또다시 대량해고가 있었고 현재 10일 가까이 현장에서 농성 중이다. 대부분 4, 50대인 아주머니들이 울면서 외치는 요구는 계약해지 중지와 대표이사 면담이라는 극히 단순한 요구다. 2~3년 동안 열심히 일하다 갑자기 잘린 노동자들이 사장 얼굴 한번 보자고 10일 가까이 차가운 공장 바닥에서 고생하고 있다. 이런 퇴행과 야만이 판치는 노동현장이 된 것은 결국 아이엠에프 환란사태 이후 강요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필연적 결과지만 무엇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식의 정부의 정책 편향 탓이 크다. 불법 판정이 나도 사용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소송으로 질질 시간을 끌고, 문제가 되면 몇 푼 안 되는 벌금과 위장 도급으로 대충 지나간다. 이러니 비정규 불법파견 구조가 바뀌지 않는 것이다.다행히 인터콘티넨털호텔의 불법파견 판정에 따른 불법파견자의 직접채용 거부는 부당해고라는 전향적인 조처가 나왔다. 그리고 일부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불법파견이 확인되면 직접고용을 한다는 단협이 체결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현장에서는 불법파견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야만적인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즉각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올해 안에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화를 위해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단병호/민주노동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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