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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9 17:39 수정 : 2005.08.29 17:40

왜냐면

급기야 1997년엔 경제협력개발기구까지 나서서 한국을 ‘노동법 개정 특별감시국’으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8년이 지난 오늘까지 한국 정부는 이러한 국제적 수모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막다른 골목에선 쥐도 고양이를 문다. 절대 권력을 가진 자본 및 정권과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세력관계로 볼 때 어림없는 상대라 하더라도 한 사회를 유지하려면 서로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생산한 가치를 더 많이 되돌려받으려는 노동자들과,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자본과 기득권층 사이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파국을 막고 체제를 유지하려면 생산 주체이면서 소비의 주체인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를 일정 정도 수용해야 한다. 이 과정이 원활하도록 각국의 헌법과 국제규약은 노동자의 단결권과 교섭권, 파업권을 법으로 보장하고 노사 자율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이 한 나라를 넘어 국제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지 벌써 한 세기가 다 되어 간다. 그간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자의 기본권 향상을 위해 노동기준을 보강해 가며 가맹국들에 이를 강제해 왔다. 그러나 1991년에 국제노동기구에 가입한 한국 정부는 이러한 흐름에 맞지 않는 행보를 해 왔다. 규약 비준 건수에서도 세계 평균 38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 68건에 비해 턱없이 낮은 20건에 불과하여 캄보디아나 라오스와 함께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들은 대부분 8가지 핵심규약을 모두 비준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국은 ‘차별 금지’와 ‘아동노동 금지’만 비준했을 뿐이며, 가장 기본적인 ‘강제노동 금지’와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제회의 때마다 국제노동기구 전문위원들 입에서 한국의 노동 탄압 실상은 남미 군사독재 국가인 콜롬비아 수준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해마다 발간되는 국제노동기구 보고서에는 한국의 구속, 수배, 해고 노동자들의 명단과 그 사유가 상세히 적혀 있다.

그리고 노동법을 국제 기준에 맞춰 조속히 개정할 것과 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구제 조처를 조속히 취할 것도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마치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을 제거하라는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는 이스라엘처럼 용맹스럽게(?)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급기야 1997년엔 경제협력개발기구까지 나서서 한국을 ‘노동법 개정 특별감시국’으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8년이 지난 오늘까지 한국 정부는 이러한 국제적 수모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권중재 철폐, 업무방해죄 적용 중지, 구속·수배 중지, 공무원·교사의 노동3권 보장, 손배·가압류 철폐 등 법 개정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결과다.

노동계가 이번 국제노동기구 아태 총회에 불참을 선언하고 개최지 변경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게다가 직권중재와 긴급조정, 공권력 투입 등 최근의 사태는 역사 발전을 거꾸로 돌리고 노-정 관계를 파탄시켰다. 정부는 도대체 무슨 낯으로, 무엇을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토론하는 국제회의를 유치한단 말인가. 공연히 국익이니 국가 신인도니 떠들면서 노동계를 고립화시켜 봤자 국제적 망신만 더하게 될 것이다. 무시당하고 두들겨 맞으면서 아무 일 없는 척 손님을 맞이하기엔 노동계의 상처는 너무 깊다. 이런 상황이 올 줄 뻔히 알면서도 오만하고 독선적인 노동정책을 펴온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하루빨리 물러날 일이다. 그 길이 나라를 구하고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김지예/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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