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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9 17:38 수정 : 2005.08.29 17:39

왜냐면

올해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해 미트시험을 치른 학생이다. 작년의 합격자 대부분이 학원을 다닌 사실과, 나 자신도 당장 내년에 재도전을 위해 학원 정보를 알아보고 있는 것을 보면,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필요한 건 학부과정의 수업이 아니라 학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나는 올해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해 의학입문시험(미트시험)을 치른 학생이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절감했던 또 하나의 한계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교육이다. 이제는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해 나가는 학문의 전당인 대학원의 입시까지 사교육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의 합격자 대부분이 학원을 다닌 사실과, 나 자신도 당장 내년에 재도전을 위해 학원 정보를 살피는 것을 보면,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필요한 건 학부과정의 수업이 아니라 학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 학원 수업이라는 게 실험과 각종 보고서, 교수와의 교감으로 이루어지는 학부 수업이 아니라 시험문제를 맞히는 기술과 요령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몇 과목을 수강하면 한 학기에 대학등록금에 맞먹는 돈이 든다는 데 있다. 여기에 앞으로 늘어날 의학전문대학원과 약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경영대학원까지 합세하면 학원 선생이 최고의 직업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게 된다.

한 달에 사교육비를 3만원을 쓰는 집단, 30만원을 쓰는 집단, 300만원을 쓰는 집단이 함께 경쟁을 벌이는 나라에서 어떻게 승자가 대접받고 공정경쟁을 말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가난한 집에 태어난 자신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 종양의 원인과 치료법은 간단하다. 그 실체를 감추고 있는 괴물의 정체는 이 나라 교육철학의 부재에 있다. 고속성장의 그늘에서 우리는 성찰할 기회를 잃어버렸고 철학적 질문을 수행할 능력을 상실했다. 왜 아무도 인간 해방을 최우선 과제로 한다는 유엔 교육헌장의 내용을 무시하는지, 러시아가 미국의 과학을 따라갈 수 있었던 교육의 순수성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학교에는 싱클레어도 데미안도 없다. 단지 냉혹한 현실을 재빨리 깨닫고 옆의 친구를 밟고 한 단계 높은 등급의 학교로 진급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좀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있을 뿐이다. 꿈과 이상이란 경쟁 앞에서 한낱 넋두리나 패배자의 변명밖에 되지 못한다.

전문대학원 제도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제도로서 국가의 축을 이루는 법과 경영, 의료 분야에 성숙한 인재 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선진교육 틀의 하나다. 그런데 우리가 제도를 도입하면서 우리 식대로 바꾸는 것은 고작 사교육밖에 없다. 그리고 그 속에는 성적 제일주의가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줄 세우는 도구가 바뀌었을 뿐, 수능과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이다. 시험의 변별력을 인정하지 않고 한해 5~10%의 학생을 성적을 무시하고 2년에 걸친 인터뷰로 뽑는 옥스퍼드 로스쿨, 하버드 메디컬스쿨을 말하는 것이 사치일까? 1년 이상의 인터뷰 기간이 상식인 미국의 메디컬스쿨과 미트시험을 자격고사로만 활용하는 방식은 우리나라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일까?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데 전문대학원이 동참할 수 없다면 최소한 학생들을 학원으로 몰아넣는 아이러니는 없어져야 한다. 사실상 도움이 될 만한 문제집 하나 나와 있지 않은 현실에서 혼자 묵묵히 준비한 학생들에게 좌절을 주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교육방송을 활용한다든지 방학기간에 각 대학에서 강좌를 개설하는 것도 최소한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문제되고 있는 전문대학원의 등록금도 해결해야 될 과제이지만, 입학하려고 비싼 사교육비를 쓰는 학생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비즈니스맨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의 능력을 사회와 나누거나 의료행위의 사회환원을 실천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 책상에 붙어 있는 ‘국경 없는 의사회’ 포스터도 어느 순간 없어질지 모를 일이다.

한국 교육에서 경쟁 제일주의의 환상이 벗겨지는 날, 교실에서 우리는 다시 싱클레어와 데미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임춘우/부산 동래 온천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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