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서울시교육청의 학력신장방안이란 결국 허울 좋은 ‘실력과 인성’이라는 말 뒤에 숨어 교육을 끝없는 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정책이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취임한지 꼭 1년이 지났다. 공교육감은 취임하면서 실력과 인성이 조화를 이룬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학교현장을 보면 과연 실력과 인성이 조화를 이룬 교육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올초 서울시 교육청이 학력평가 방안을 발표한 뒤, 서울시내 초등학교에서는 일제고사식 학력평가가 부활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국공립학교 519교 중 515교에서 학업성취도 평가의 형태로 학기당 평균 2회 정도의 시험을 실시하거나 예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공 교육감 취임 이후 발표한 이른바 ‘학력신장 방안’의 일환으로 초등학교에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도록 권장한 바에 따른 것이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교과별 학습목표 도달도 평가로서, 100점 만점 위주, 선택형 시험, 단답형 시험 등에서 탈피하여 서술형, 논술형, 수준별 문항 등으로 전환하여 실시하라고 했지만 시교육청도 인정하고 있듯이 일부 학교에서는 노골적으로 과거의 점수형 시험이나 일제고사 형태의 시험을 치르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 공 교육감은 지난 1월31일 기자회견에서 8년 전에 사라진 초등학교의 기말, 월말고사와 같은 일제고사를 학교 자율에 맡겨 부활시키겠다고 밝혔다. 다음날 초등학교 학습지 주가가 큰 폭으로 올랐다. 이는 일제고사를 앞두고 교육과정이 문제풀이 중심으로 갈 것임을 간파한 시장의 발빠른 반응이라 볼 수 있다. 학교도 마찬가지로 반응했다. 교육감의 발표 이전에 이미 많은 학교에서는 서울시 교육청의 정책방향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알고 사실상 일제식 학력평가를 연초부터 계획해 놓고 있었다. 교육청 계획은 1단계에서 3단계로 점차 확대하는 계획을 세워놓았지만 학교는 그 단계를 뛰어넘어 전면 실시로 나아간 것이다. 교육청의 학업성취도 평가 계획은 서울 시내의 많은 초등학교에서 구시대의 유물인 일제고사를 부활시켜 놓았으며 세세한 점수와 서열까지 드러나는 통지방식마저 수십 년 만에 다시 등장기키기에 이르렀다. 일제고사가 현행 7차교육과정과 교육부의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국민보통교육을 지향하는 초등교육의 이념과도 걸맞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제고사와 같은 결과중심평가는 정상적인 초등교육의 파행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사교육 시장의 팽창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또한 일제고사는 교사의 고유한 평가권과 수업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게 된다. 평가가 획일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교사의 창의적인 교수활동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수능에서 실증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수능시험이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고등학교 교육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초등학교에서 월말고사와 같은 일제평가가 사라지고 수행평가가 중심에 놓이면서 교육과정의 다양성이 확보되고 있는 것은 평가가 교육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말해 준다. 평가는 교육활동의 일환이다. 교육행위와 별도로 평가가 존재하는 순간 모든 교육은 평가를 위한 교육으로 왜곡되고 마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의 학력신장방안이란 결국 허울 좋은 ‘실력과 인성’이라는 말 뒤에 숨어 교육을 끝없는 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정책에 다름 아니다. 이제라도 서울시 교육감은 1년 전 취임사에서 밝힌 바대로 학생 개개인의 능력과 적성을 존중하는 교육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교사의 평가권을 보장하도록 교육정책 방향을 새롭게 짜야 할 것이다. 이용환/서울신방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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