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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2 17:40 수정 : 2005.08.22 17:54

왜냐면

인천교육청의 장학관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교육과 관련하여, “내가 일전에 산을 오르다 죽은 벌레를 보고 징그럽게 느꼈었다. 이처럼 사람의 느낌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지금 인천교육청 정문 앞에서는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이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특수교육 예산이 전체 교육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도 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암울한 현실에서, 인천시는 그나마도 다른 지역에 비해 그 비중이 더 낮고 협상 의지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농성이 길어지고 있다. 곧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진학하는 장애아동들이 갈 학교가 없고, 이들을 가르칠 교사가 없는 실정에서 당장 내년 일을 걱정해야 하는 부모들의 심정은 그들을 이렇게 힘든 싸움에 참여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19일, 초등학교 시절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한 경험이 있는 나는 이 농성에 짧게나마 참여하고 있었다. 우리는 대표단을 격려하고 교육청의 불성실한 협상 태도를 비판하며 그 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러던 중 대표단에게서 경악할 말을 들었다. 인천교육청의 특수교육담당 장학관이라는 사람이 오전의 협상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교육과 관련하여, “내가 일전에 산을 오르다 죽은 벌레를 보고 징그럽게 느꼈었다. 이처럼 사람의 느낌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장학관의 발언 내용을 듣자 농성장의 부모들은 그전까지 평화롭고 침착하던 분위기를 깨고 오열하며 교육청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나는 또한번 놀라고 말았다. 갑자기 그곳을 지나던 한 시민이 교육청 정문을 걸어나오며 농성단을 비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라며 그는 교육청의 정문을 막아 단지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 걸어서 가게 된’ 상황으로 겪게 된 불편함 때문에 농성단을 비난했던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연대의식이 얼마나 취약하며 저급한 것인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장애인의 교육을 책임지는 장학관은 장애인을 함께 가야 할 공동체 구성원이 아닌 ‘혐오스러운 벌레’로 인식하고 있고, 그에 대한 분노로 농성 중인 부모들에 대해 지나가는 시민은 ‘비난’을 퍼붓는 것이다.

도대체 왜 생업을 포기하고 농성장에 부모들이 나와 울고 있는지 그 시민은 단 10분만이라도 생각해보려 했을까. 아니면 그러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벌레’이기 때문에 연대할 수 없다는 것인가. 나는 그들이 말한 ‘벌레’의 한 마리로서, 도대체 얼마나 사회가 더 성숙해야 그러한 농성의 내용을 진지하게 공감하려 노력하고, 그것에 최소한의 지지와 연대를 보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끼리 설혹 약간의 불편함이 있더라도 진지하고 합리적인 고민을 바탕으로 지지해주고, 그것을 통해 ‘하루 벌어 천일쯤 먹고 사는’ 사람들의 편견과 거만함을 깨뜨리고 평등한 소통과 합리적 논의가 가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과연 ‘벌레’들만의 꿈이었는지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농성장에서 나는 그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더욱 거세지는 것을 느꼈다.


김원영/서울대 장애인권연대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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