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온 나라가 남북관계의 진전에 기뻐하며 한반도 평화 정착의 가능성을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점치고 있는 이때에 북에 대한 전면전을 상정한 전쟁계획을 실습하기 위해 범국민적인 전시동원연습을 하는 것은 남북 화해를 바라는 국민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입니다. 이상희 합동참모본부 의장님! 이달 22일부터 9월2일까지 한-미 연합으로 27번째 ‘을지포커스렌즈(UFL) 연습’이 실시됩니다. 우리는 이번 연습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의 해결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정착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주한미군의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으로의 역할 변경을 전제로 한 연습이기에 합참이 이번 연습을 철회해 주실 것을 촉구합니다. 나아가 미군 당국에도 연습 중단을 요청할 것을 제안합니다. 세계 최대의 컴퓨터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지휘소 훈련으로 알려져 있는 본 연습은 주한미군 5천여명과 국외주둔 미군 5천여명, 한국군 군단 및 함대사령부, 전투비행단, 향토사단의 경우 대대급 이상의 부대가 참가하여 북 급변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OPLAN) 5027, 5029’를 실습하는 대규모 전쟁연습입니다. 특히 이번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은 미2사단이 ‘미래형 사단’(UEx)으로 개편을 완료한 뒤 처음 벌이는 한-미 연합 군사연습입니다. 정밀타격력과 신속기동력을 핵심으로 하는 미래형 사단은 이번에 북 지휘부, 핵, 미사일 등의 핵심 전략 타격목표를 신속하게 제거하는 훈련을 하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대북 선제공격 능력을 완비하고자 할 것입니다. 또한 이번 연습은 한-미 연합사 지휘통제자동화체계(C4I)에 한국 합참 및 육·해·공군 작전사령부는 물론 예하부대의 작전을 실시간 지휘할 수 있는 지휘통제체계가 통합 운영되고 한국군의 ‘모의전쟁’과 한-미 연합사의 모의전쟁 프로그램이 자동연계되어 연습에 활용됨으로써 대북 전쟁 시나리오가 한층 발전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상희 합참의장님! 지금 한반도 평화통일 정세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올해 8·15 민족통일대축전을 전후하여 ‘분단 이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역사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북쪽 대표단이 현충탑을 찾아 예의를 표하고 국회를 공식 방문했으며 남북이 공동으로 겨레말 큰사전을 편찬하기로 했습니다. 농업·수산 분야에서의 협력이 시작되었고 북한 선박이 제주해협을 통과했으며 남북간 광통신망이 연결되고 이산가족의 화상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평화통일 정세는 이제 북을 적으로 겨누고 북을 궤멸시키기 위한 전쟁연습을 벌일 수 없다는,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은 국방 당국자들이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평화통일 정세의 발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냉전적 사고에 갇혀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이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을 문제삼아 장성급 회담 일정 합의를 거부한 것은 국방 당국자들의 시대역행적인 구태가 남북 화해의 핵심적 내용인 군사 분야의 신뢰구축과 협력을 후퇴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온 나라가 남북관계의 진전에 기뻐하며 한반도 평화 정착의 가능성을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점치고 있는 이때에 북에 대한 전면전을 상정한 전쟁계획을 실습하기 위해 범국민적인 전시동원연습을 하는 것은 남북 화해를 바라는 국민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정면에서 부정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인천시가 북쪽이 대규모로 참석하는 아시아육상경기 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열리는 을지포커스렌즈가 “북쪽을 자극”하게 된다며 인천시를 이번 연습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한 일은 평화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반영하는 일로,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이상희 합참의장님! 비록 6자 회담이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휴회되었으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문제가 북-미 간에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성과를 낳았습니다. 6자 회담 미국 쪽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우리에게 대북 적대시 정책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평화협정을 추진할 의향이 있다”고 하여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를 밝혔습니다. 여기에 이달 말에 재개되는 6자 회담에서 북의 평화적 핵이용권이 보장되고 미국의 대북안전보장조처가 가시화한다면 평화와 통일의 물줄기는 더욱 거침없이 흘러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의 얼음은 순식간에 녹아내리고야 말 것입니다. 이런 터에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이 진행된다면 이는 어렵게 재개된 6자 회담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고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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