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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2 17:30 수정 : 2005.08.22 17:54

왜냐면

선생은 원래 ‘시간강사’라는 정식 명칭이 있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그 말에는 천대와 멸시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흔히 ‘파출부’라고도 한다.

그 나라 대학에는 두 종류의 선생이 있다. 하는 일은 대체로 비슷하나 법적·경제적 대우는 천지차이가 난다. 하나는 교수라 불리고, 다른 하나는 선생으로 통하는데, 전자는 법적으로 그 학교 교원으로 인정되고 여러 가지 혜택(퇴직금, 각종 수당, 연구비 수혜 등)을 누린다. 반면에 후자는 법적으로 그 학교 교원이 아니다. 그러니 교수가 받는 혜택은 생각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교수가 봉급으로 매달 100을 받는다면 선생은 20 정도를 받는다. 그나마 4개월간의 방학 중에는 그것조차 없다. 그러면 그들은 그동안 무얼 먹고 살지? 아무도 그에 신경 안 쓴다. 이 얼마나 이상한 나라인가!

선생은 원래 ‘시간강사’라는 정식 명칭이 있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학생들은 물론, 심지어는 본인 자신도 잘 사용하지 않고, 또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 말에는 천대와 멸시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흔히 ‘파출부’라고도 하는데 그 말은 이런 현실에 대한 아주 정곡을 찌른 표현이다. 존경받는 교수님과 천대받는 파출부가 한 대학에서 똑같이 학생들을 가르치며 공존하는 나라, 이 얼마나 이상한 나라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선생들이 대다수 대학에서 강의의 거의 절반을 도맡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학은 학생들로부터 등록금을 받아 법적으로 교원이 아닌 임시직 선생에게 교육의 절반을 받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설령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지 모르겠으나(이 얼마나 절묘한 법 운용인가!), 얼마나 비교육적·비양심적인 작태인가!

그렇다면 선량한 학생들을 교육하는 선생들은 과연 누구인가! 아무런 법적 지위도, 경제적 안정도 없는, 말하자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불안하고 황폐하고 의기소침한 그들에게서 어떤 학문적 권위나, 질 좋은 교육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학생들은 정식 교육자에게 교육을 받으려고 등록금을 낸 것이지, 임시 교육자에게 교육을 받을 생각으로 돈을 지불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상황에 대한 아무런 내용도 학생은 물론 학부모도, 학교당국으로부터 통고받은 적이 없다.

생각해 보자. 자신의 자식이 병이 들어 거액을 들여 1년간 병원에 입원시켰다고 했을 때, 그 가운데 6개월은 병원 소속 의사가 치료를 담당하고, 반은 그 병원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임시의사가 맡아 치료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임시의사가 심혈을 기울여 그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그러면서 대다수 고위 교육담당자들은 국가경쟁력을 말한다. 자신의 학생들을 이런 상황에 몰아넣고 경쟁력을 말하다니, 개가 하품할 노릇이 아닌가! 그런데 바로 이런 말들이 소위 최고 지식인이라는 대학총장이나 국가교육 총책임자들의 입에서 나오니 이 얼마나 이상한 나라가 아니겠는가!

한흥섭/홍익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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