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15 17:43
수정 : 2005.08.15 17:44
왜냐면
이래 가지고서야 어찌 한국사회의 중요한 해결과제 중의 하나인 노동문제를 풀 수 있겠는가? 노동3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성한 권리다.
역사상 3번째 긴급조정권이 발동되었다. 8월10일 마지막 교섭자리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낭패감보다는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 시간까지 긴급조정권 발동을 막기 위해 노사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13개 핵심 쟁점 가운데 이견이 남아 있었던 것은 “정년, 유급휴일, 총비행시간” 등 불과 3~4개 조항뿐이었다. 어려움이야 있었지만 근접하고 있던 상황을 무시하고 결국 정부의 체면 때문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고야 말았다. 게다가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노조가 차라리 긴급조정을 받아 중노위 조정안을 받는 것이 낫겠다는 점을 공식 입장으로 밝혔다고 보고받았다”는 거짓말까지 보탰다. 세상에 어떤 노조가 ‘공식 입장’으로 노동자에 대한 긴급조치에 해당하는 악법을 수용하겠는가? 긴급조정권은 직권중재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저항은 물론 국제노동기구(ILO)의 개정을 권고받고 있는 노사간 자율교섭을 가로막는 대표적 악법이다.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려면 “쟁의행위가 공익사업에 관한 것이거나” “현저히 국민경제를 해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현존하는 경우”로 엄격히 한정되어 있다. 수많은 노동자의 쟁의에도 불구하고 69년과 93년 두 차례밖에 시행이 안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전력대란’을 예고했던 38일간의 발전노조 파업에도, ‘국가변란세력’으로 운운되던 한국통신 파업 등에도 아예 검토조차 되지 않았었다. 이미 구시대적인 악법으로 역사의 무덤에 보관되어 있을 뿐이었다.
김대환 장관은 노동부 장관이 되자마자 온갖 파행을 반복했다. 국가인권위의 비정규직과 관련한 견해표명에 대해 “잘 모르면 용감해진다”고 비아냥거리고, 투쟁 현장에서 차에 치여 죽은 초유의 일이 발생한 고 김태환 열사 투쟁 중에는 “분규 현장에 가지 않는 것이 내 원칙이다”는 강변을 늘어놓는 등 끊임없이 노동자들에게 망언을 쏟아부었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의 퇴진투쟁을 역사상 처음으로 요구받고 있는 장관이 되고 말았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찌 한국사회의 중요한 해결과제 중의 하나인 노동문제를 풀 수 있겠는가? 노동3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성한 권리다. 이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이번 긴급조정권 발동은 전혀 ‘긴급’하지 않은 민간사업장의 분규에 노동부 장관이 개입하여 오히려 노-정간 극단적인 대립을 부른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이미 노동계는 10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노동기구 아태지역 총회에 불참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강제적인 조정이 불러온 필연적 결과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대립이 예고되어 있다. 적어도 ‘노동’부 장관이라면 노동계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긴급조치를 남발하던 박정희 대통령조차도 무덤에서 돌아앉을 긴급조정권을 발동한 김대환 장관은 ‘긴급’하게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그게 극단으로 치닫는 노동문제를 정상화시키는 출발점이다.
이근원/민주노총 공공연맹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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