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보안법에 얽매인 자유를 되찾을 때 |
지난 9일 신임 한국외국어대 총학생회가 주체사상과 관련된 문건을 발견했다고 경찰서에 신고했다. 신고 이유는 보안법의 불고지죄에 저촉받지 않기 위해서란다. 이 사건은 보안법이 얼마나 심각하게 사람들의 생각을 얽매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지난 9일 신임 한국외국어대 총학생회는 청량리 경찰서로 한 통의 신고 전화를 걸었다. 주체사상과 관련된 문건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총학생회는 발견된 문건과 자신들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후 또다른 기자회견을 통해서 자신들은 교내의 어떠한 생각도 탄압할 생각이 없으며, 신고 이유는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에 저촉받지 않기 위해서라는 뜻을 표명하였다. 다양한 사상과 학문을 공부하는 대학에서, 불고지죄로 처벌받는 것이 두려워서 총학생회가 학교에서 어떤 문건이 발견되었다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상황, 이것이 보안법이 없어져야 하는 이유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한다.
사상의 자유는 근원적인 자유다.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 윌 스미스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누가 어떤 속옷을 입는지에 대해 이야기는 할 수 있어도, 입는 속옷을 제약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야한 속옷을 좋아할 것이고, 또다른 이는 따뜻하고 기능적인 속옷을 좋아할 수도 있다. 사상도 마찬가지다. 누가 어떠한 생각을 하건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그것이 실질적으로 나라에 위협이 되는 형태의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 그것을 처벌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크게 억압하는 행위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어떠한 생각은 되고 어떠한 생각은 안 된다는 규제를 두고 사상을 통제하려는 것은 그 나라가 추구하는 바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하고, 자유주의자임을 자처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보통의 경우 두 원칙을 지닌다. 하나는 경제에서 시장주의이고, 또 하나는 정치적 자유주의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이 두 가지 가치 중 하나만을 편식하는 경향이 있다. 시장경제와 자본의 논리에는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낸다. 하지만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는 형식적인 선거만을 인정할 뿐 내용에서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에는 인색하기만 하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라면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국가보안법 철폐는 자유주의자가 먼저 외쳐야 한다. 자유주의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먼저 노력해야 한다. 자유주의자가 정치적인 자유를 외면하면서 스스로 자유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나 모순된 모습이다.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적 자유가 필요하다. 정치적 자유는 사회적 상상력을 증대시키고 다양한 대안을 도출하게 만든다. 어린아이를 키울 때는 무엇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보다는 무엇을 하라는 이야기로 아이의 생각을 넓혀주는 것이 더 긍정적이라고 한다. 이번 주체사상 신고 사건은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심각하게 사람들의 생각을 얽매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보안법을 없애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억압 장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두루 자유롭게 만드는 일이다.
김동현/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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