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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8 18:10 수정 : 2005.08.08 18:11

왜냐면

법적 안정성이라는 법형식 논리에 얽매어 환급 대상을 제한한다면, 정부는 더는 법과 정의를 이야기할 수 없고, 오히려 법적 안정성을 깨뜨려 법치 행정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학교용지에 관한 특례법은 2005년 3월24일 개정되기 전에는 공립 초중고등학교의 학교용지를 쉽게 확보하기 위하여 건축법, 주택법 등 관련 법률에 따라 개발되는 300가구 규모 이상의 주택 건설용 토지 또는 주택을 분양받는 자에게 학교용지 부담금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3월31일 헌법재판소는 학교용지는 의무교육의 물적 기반이므로 토지 또는 주택을 분양받은 특정집단으로부터 부담금을 징수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의무교육의 무상원칙과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결국 정부는 2002년부터 법률의 근거 없이 학교용지 부담금 약 4300억원을 거둬들인 셈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부담금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여기에 법적 안정성에 터잡은 논란이 있다. 헌법재판소법이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조항은 형벌에 관한 법률조항이 아니라면 위헌 결정이 있는 날로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대법원은 위헌 결정 이후에 제소된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 위헌 법률이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위헌 결정의 효력이 소급하여 미친다고 하는 등 국민의 권리구제를 꾸준히 확대해 왔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위헌 결정이 있었다고 하여 위헌 법률에 근거한 행정 처분이 당연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하였고, 그 결과 제소기간이 경과하여 확정력이 발생한 사건까지 위헌 결정의 소급효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제소기간을 놓친 부담금 납부자의 구제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교육부가 전국 시도에 보낸 학교용지 부담금 환급지침은 대법원이 취한 법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지침을 보면, 쟁송기간 안(부과처분을 안 날로부터 90일 안)에 행정소송, 행정심판, 감사원 심사청구 등 쟁송수단을 통하여 이의를 제기한 사람에 대해서는 부과처분을 직권 취소하고 부담금을 환급하라는 것인데, 이들은 어차피 쟁송수단에 의해 구제받을 수 있음에 비하여, 쟁송기간이 경과한 자, 쟁송기간 안이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자 등이 환급대상에서 빠졌다. 결국 위헌 결정이 언제 있었느냐라는 우연한 사정에 의하여 법과 정책을 믿고 따른 사람이 손해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 2005년까지 부담금으로 거둔 금액은 약 2천억원이고, 행정심판 청구는 약 8천건, 감사원 심사청구는 약 4만6천건인데, 이중 환급지침에 의하여 구제받는 경우는 약 500억원에 불과하므로 구제받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저항은 예측 불능이다.

지금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부담금 환급대책을 논의하고 있으나, 당은 이의신청 여부나 기간에 관계없이 납부자 전원에게 학교용지 부담금을 돌려줄 것을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헌재 결정이 형벌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면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이의를 신청하지 아니하거나 기간이 경과한 납부자에게까지 환급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위헌 결정은 국가의 잘못을 확인해 준 것이므로 국가는 자신이 만든 위법 상태를 스스로 제거할 의무가 있다. 법적 안정성이라는 법형식 논리에 얽매어 환급대상을 제한한다면, 정부는 더 는 법과 정의를 이야기할 수 없고, 오히려 법적 안정성을 깨뜨려 법치행정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열린우리당 이상민 의원이 모든 사람에게 부담금을 환급하는 것을 뼈대로 발의한 학교용지 부담금 환급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환급대상에서 빠진 부담금 납부자들로부터 하루에도 수십통씩 볼멘 전화를 받을 때 어떤 말로도 이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3년치 가계부를 내보이며 “나는 이렇게 각종 공과금을 성실하게 납부해 왔다”며 앞으로는 일단 내지 않고 버티겠다는 어떤 아주머니의 푸념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법은 지켜질 때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학교용지 부담금 환급특별법을 서둘러 제정하기 바란다.

최종구/경기도청 법무담당관실 행정심판전문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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